"분노는 발전과 변화의 동력…긍정의 에너지로 전환해야"
신간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분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10년 전쟁을 다룬 이 작품에서 '분노'는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아킬레우스는 예쁜 포로를 그리스군의 지휘자인 아가멤논에게 빼앗기자 화를 냈고, 이에 앞서 아가멤논은 세계 최고의 미녀인 헬레네를 트로이가 납치했을 때 분노를 느꼈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이야기가있는집 펴냄)에서 분노를 철학적으로 분석한 뒤 서구 문명에서 분노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떨쳤는지 조명한다.
저자는 '일리아스'를 통해 서양 사상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문학에서부터 분노가 높은 위상을 차지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현실주의자라면 투쟁을 우선으로 하는 분노의 상징적 특징을 완전하지 거부하지 못한다"면서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도 어쩌면 트로이 전쟁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분노는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종교 교리에 활용되기도 했다.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신은 분노를 발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고 정의로우며 사랑이 넘치지만, 인간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분노를 표출한다. 중세 유럽에서 인간이 신에게 느낀 두려움은 분노에 기인했다.
저자는 19세기부터는 기독교와 유대교를 대신해 정치인들이 분노를 조직적으로 모아 체제 유지에 이용했다고 지적한다. 또 아나키스트적 테러리스트, 공산주의 중앙집권주의자, 사회민주주의 개혁주의자들도 분노를 이용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현대에도 분노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벌이는 무자비한 테러는 서구의 분노를 야기하고, 민족주의적 분노는 특정 국가나 정치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저자는 분노를 인류에게서 뗄 수 없는 감정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분노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좋은 지도자가 나타나면 자잘한 분노의 감정을 한데 모아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분노는 대인적·정치적·문화적 관계에서 상호작용하는 생태계의 기본 동력"이라며 "(분노에서 비롯된) 티모스(용기·기개)로 가득한 에너지는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는 이미지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덕임 옮김. 424쪽.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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