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번지' 사전투표 현장 가보니…유니폼에 회사목걸이 걸고

입력 2017-05-04 12:58
수정 2017-05-04 14:11
'정치 1번지' 사전투표 현장 가보니…유니폼에 회사목걸이 걸고

선거민심 '바로미터' 사전투표율…"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오전부터 광화문 종로구청 투표소에 유권자들 '북적'

(서울=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 "나라가 안정과 화합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정의를 바로 세우는 사람에게 한 표를 던졌습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실시된 첫날인 4일 오전 서울 종로구청. '정치1번지'인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 근무하는 유권자들로 구청은 온종일 북적였다.

별관에 마련된 사전 투표장은 오전 9시께부터 한 번에 5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오전 내내 투표장을 찾는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사무실 빌딩이 밀집된 종로구의 특성 탓인지 유니폼을 입었거나 회사 출입증 목걸이를 목에 건 이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형광색 조끼의 경찰 정복을 입은 경찰관들도 줄지어 투표장을 찾았다. 이들은 "9일에는 근무를 해야 해서 사전투표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19대 대선의 사전투표는 4일과 5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읍·면·동에 1개씩 3천507개의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별도의 신고 없이 신분증만 있으면 투표할 수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전국단위 사전투표가 진행됐고, 대선 사전투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선 당일인 9일을 앞뒤로 노동절,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등 징검다리 휴일이 몰려 있어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7일까지 최장 9일까지 쉴 수 있는 '황금연휴'로 꼽힌다.

이 때문에 각 후보 캠프에서는 선거 당일 투표율이 낮을 것을 우려해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등 투표율 높이기에 힘을 쏟았다. 나들이객이 몰리는 공항, 기차역, 버스터미널, 휴게소 근처에서는 '투표하고 놀러가자'는 메시지를 내고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도 사전투표 알림 홍보물을 적극적으로 게시했다.

사전투표율은 이번 선거 투표율의 '바로미터'로 해석되기도 한다. 긴 연휴 중 해외여행 등으로 9일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그만큼 민심의 선거참여 의지가 높다고 봐도 되기 때문이다.

투표장 입구에서는 투표사무원이 "종로구민(관내선거인)은 왼쪽, 관외 주민은 오른쪽"으로 줄을 서라고 당부했다. 관외선거인이 관내선거인에 비해 9:1가량 비율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민들은 투표장 입구에 붙여놓은 사전투표 안내문을 읽으면서 신분증을 주섬주섬 꺼내들고 줄을 섰다.

헬멧을 쓰고 자전거 라이딩 복장을 한 김모(56)씨는 "24시간 근무를 한 뒤 퇴근길에 투표하러 왔다. 투표 후에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탈 계획"이라며 "가진 사람들이 아닌 서민의 힘든 삶을 어루만지는 대통령이 뽑혀서 나라가 안정과 화합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직장 동료와 나란히 투표하러 온 황찬익(54)씨는 어떤 후보를 뽑을지 일찌감치 결정해 놨기 때문에 빨리 뽑고 싶어서 사전투표장을 찾았다고 했다. 황씨는 "박근혜 정권이 중간에 사퇴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새 대통령은 새 미래를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과 동행하거나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 단위 유권자들도 많았다.

징검다리 연휴에 인근 호텔에서 머물며 휴식을 즐기고 있다가 투표하러 나왔다는 공무원 양모(38)씨는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나왔다. 대통령선거에서 사전투표는 처음인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정의를 바로 세워주는 사람에게 한 표를 던졌다"고 전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등장한 류채은(36)씨는 서울에서 연휴를 즐기기 위에 부산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류씨는 "정치 1번지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종로구청으로 투표하러 나왔다"며 "작년에 여러 가지 일들을 지켜보면서 꼭 투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국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같은 마음들이 모이면 이 나라가 바로 설 것"이라고 희망을 말했다.

1941년생으로 6·25 전란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임성기씨는 투표를 마치고 나오면서 "국가의 외교가 힘든 상황이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절차와 내용 모두 잘못됐다"며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만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선에서 처음 실시된 사전투표를 해보니 신선하고 설렌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직장인 김현주(24)씨는 "투표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스크만 쓰고 나왔다. 투표 과정이 간편하고 편리하고, 투표용지를 밀봉하는 것도 새롭다"고 소감을 전했다.

투표를 마친 시민들은 밝은 표정으로 '우리나라는 선거관리시스템이 너무 잘 돼 있다', '홀가분하게 일하러 갑시다' 등의 말을 함께 온 동료들과 주고받았다.

대다수 시민들은 '종로1·2·3·4가동 사전투표소'라고 표시된 투표장 앞에서 '엄지', '알파벳 브이(V)' 등 포즈를 잡으며 '인증샷'도 남겼다.

한 시민은 "이번 선거부터는 인증샷 찍을 때 '브이(V)'자 그려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냐"며 투표사무원에게 묻기도 했다.



wi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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