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마크롱·르펜 마지막 TV토론…고성·비웃음 속 팽팽한 설전
처음부터 세시간 반 내내 날선 공방…비아냥과 인신공격 등 치열한 심리전도
토론직후 여론조사서 유권자 63% "마크롱이 더 설득력 있어"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오는 7일 프랑스 대선 결선에서 맞붙는 숙적 에마뉘엘 마크롱(39·앙마르슈)과 마린 르펜(48·국민전선) 후보가 대선 전 처음이자 마지막 양자 토론에서 격돌했다.
결선투표를 나흘 앞둔 3일 저녁 9시(현지시간)부터 세 시간 반 넘게 TF1 방송 등 여러 채널로 생중계된 TV토론에서 두 후보는 초반부터 날 선 공방을 주고받으며 한순간의 양보도 없는 설전을 벌였다.
르펜의 프랑스 우선주의와 국경폐쇄, 유럽연합 탈퇴 입장과 마크롱의 친(親)유럽과 개방경제라는 비전이 첨예하게 맞부딪친 가운데, 두 후보는 비웃음과 비아냥거림, 고성과 인신공격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치명타를 한 방이라도 더 날리려고 분투했다.
첫 질문은 마크롱의 전공 분야인 경제였다. 영광의 30년을 뒤로 한 프랑스 경제의 쇠락과 10%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 25%에 달하는 청년 실업 문제의 해법을 묻는 시간이었다.
현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지낸 마크롱은 "중소기업들에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규제 간소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창업을 쉽게 하고 실패를 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롱이 개방경제와 기업규제 완화라는 교과서적 해법을 제시한 반면에 르펜은 보호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다.
르펜이 일자리를 아웃소싱하는 프랑스 기업의 상품들에 과세하겠다는 방침과 국부펀드 조성을 언급하자 마크롱은 말을 끊고 이미 다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공격했다.
마크롱이 르펜에게 금융과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도 하지 못한다고 공격하자 르펜은 "나와 교사와 학생 놀이를 하려는 것 같은데 나는 관심 없다"고 되받아쳤다. 듣기에 따라 마크롱이 24살 연상의 고교 시절 교사였던 현재의 부인과 결혼한 것을 비아냥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경제문제에서 토론이 과열되면서 마크롱이 르펜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자 르펜은 "나와 장난하지 말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르펜은 특히 마크롱에게 "대기업과 금융업계의 시종"이라며 "국가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라 로톤드'에서 함께 술을 마신 친구들 등 사적인 이익에만 골몰한다"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바로 내가 사랑하는 조국 프랑스와 국민의 후보"라고 주장했다. 마크롱이 1차 투표에서 1위를 결선에 진출한 밤 파리 몽파르나스의 고급 비스트로인 '라 로톤드'에서 캠프 관계자와 지인들을 불러 자축연을 열어 "벌써 승리에 도취했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했던 것을 끄집어낸 것이다.
르펜의 공격은 집요하게 이어졌다.
그는 투자은행 로스차일드 출신인 마크롱을 "영혼도 없는 냉혈한 자본가이자 야만적인 세계화론자"라고 몰아세우고 마크롱이 집권하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자본주의의 투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마크롱은 "르펜은 위험한 극단주의자이자 거짓말쟁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르펜이 대변하는 극우 민족주의라는 것은 프랑스 국민의 분노와 공포심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껍데기뿐인 술수"라고 비난하며 "당신은 항상 거짓말만 할 뿐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는다"고 몰아쳤다.
토론 내내 둘의 설전은 평행선을 달리며 팽팽한 대결 양상이 이어졌다. 특히 유럽연합 문제로 논쟁할 때는 둘 간의 입장에 한 치의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르펜은 유럽연합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를 재차 공언했고, 마크롱은 반대로 유럽연합 잔류와 자유무역의 가치를 옹호했다.
르펜이 옛 프랑스의 국가통화인 프랑화를 재도입하고 유로화는 대기업 간 국제결제에만 사용하겠다는 주장을 펴자 마크롱은 중간에 말을 끊고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그러자 르펜은 ""어찌 됐든 프랑스는 여성이 이끌게 될 것이다. 나 혹은 메르켈 말이다"라며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면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품 안에서 놀게 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초반부터 팽팽하게 이어진 공방 때문에 둘의 발언이 동시에 펼쳐져 무슨 내용을 얘기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다.
점증하는 테러 위협 문제는 토론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주제 중 하나였다.
르펜은 "모든 악의 근원은 우리 땅에서 이슬람 극단주의가 자라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슬람 극단주의의 발본색원을 약속했다.
그는 특히 마크롱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굴복하고 있다면서 "마크롱에게 당신은 그런 일(테러 대처)을 할 수 없다. 그들이 당신을 조종할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마크롱은 이에 대해 내전을 책동하는 것이냐며 맞받아쳤다.
그는 "르펜의 계획이야말로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며 "그런 것이 바로 테러리스트들이 기대하는 내전이고 분열이다.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비난했다.
이날 토론은 두 진영이 대변하는 개방과 폐쇄, 다원주의와 무관용, 자유무역과 보호주의, 친(親)유럽연합과 프랑스 우선주의가 첨예하게 부딪치기도 했지만, 서로의 스타일이 충돌한 자리이기도 했다.
마크롱보다 9살이 많고 이번에 두번째로 대권 도전에 나선 르펜은 마크롱이 말할 때 종종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도발을 했고, 마크롱은 르펜이 말할 때 턱에 손을 괴고 한심하다는 듯 대응하는 등 치열한 심리전도 펼쳤다.
시청자들은 해박한 지식과 인신공격을 절묘히 섞은 전법을 구사한 마크롱의 편을 들어줬다.
토론 종료 직후 여론조사기관 엘라베와 BFMTV가 공동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누가 더 설득력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63%가 마크롱이라고 답한 반면 르펜을 꼽은 응답자는 34%에 그쳤다.
마크롱과 르펜은 오는 7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양보 없는 진검승부를 벌인다. 현재까지 공개된 여론조사들에서 마크롱이 59∼60%, 르펜이 40∼41%의 지지율로 마크롱이 20%포인트 내외를 앞서고 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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