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취업비자 대수술로 한인사회 '충격'
사실상 영주권 봉쇄…요식·교육 등 전반 후유증 예고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1일 저녁 호주 시드니의 한인 밀집지인 이스트우드에 있는 한 건물로 한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호주 정부가 지난달 18일 기존의 취업비자(457비자)를 전격적으로 폐지하고 새로운 비자로 대체하기로 한 데 대해, 한인신문인 한호일보 측이 법률회사와 손잡고 설명회를 여는 자리였다.
주최 측은 애초 100개의 좌석을 준비했으나 젊은층을 중심으로 예상보다 배 이상 많은 사람이 몰리자 급하게 자리를 더 마련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였다.
호주의 취업비자제도 변화에 따른 충격파가 한인사회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호주 정부는 임시 근로 비자로 4년의 체류 기한을 주던 457비자를 폐지하고, TSS(Temporary Skill Shortage)비자로 대체하면서 2년짜리 단기 비자와 고숙련 기술직 대상의 4년짜리 중기 비자로 구분해 놓았다.
단기 비자든 중기 비자든 영어 구사능력과 경력 등의 조건이 강화됐고, 영주권 신청 가능 연령도 45세로 하향 조정됐다.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457비자 신청 대상 업종의 대부분이 단기 비자에 포함됐지만, 이 비자의 경우 종전과 달리 영주권 신청이 원천봉쇄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많은 한인이 영주권 취득 통로로 457비자를 받아왔던 만큼 이번 조치는 한인사회에 사실상 영주권 봉쇄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마케팅 스페셜리스트로 457비자 신청을 했는데 영주권을 받을 수 있나"라거나 "음식점을 열어야 하는데 홀 매니저로 비자를 받게 해주면 그 사람은 영주권 신청이 가능한가"라는 등 질문이 쏟아졌지만, 대부분이 영주권이 안 나오는 쪽이었다.
특히 457비자의 경우 쿡(cook)으로 일하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중기 비자 직업군에 포함된 셰프(chef)로 일해야 영주권을 받게 된 것도 많은 한인 젊은이를 낙담하게 했다.
이번 비자제도 변화로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호주를 찾는 한인이 줄게 되면 결국 요식이나 교육, 소기업 등 한인사회 전반에 타격이 클 것으로 예측되면서 '메가톤급 핵폭탄'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변호사 사무실에는 문의전화가 쏟아지고 있고, 요식업 분야에서 일하는 젊은이들 일부는 귀국을 검토하는 등 크게 동요하고 있다.
이날 설명회장을 찾은 K씨(34)는 "지난해 하반기에 쿡으로 457비자를 받았는데 이번에 영주권 획득이 불가능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절망적이기는 하지만 기회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날 설명회를 이끈 홍경일 변호사는 "호주 정부의 발표가 나온 지 2주밖에 되지 않았고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미확인 내용이 많이 유포되고 있다"며 "예외조항 등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더 기다려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호주에 1~2명의 소수를 파견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철수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호주 내 직원이 5명 미만일 경우 주재 예정자가 단기 비자 대상자가 되는데다 이 비자마저도 받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민 관련 변호사들은 호주인들을 우선 쓰게 하려는 의도로 보이나 실효성은 떨어질 것이라며 "오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동철 변호사는 "호주 일자리 중 457비자 소지자 비중은 1%로 고용창출 효과는 미미하지만, 소매경기 위축 등 부작용도 예상된다"며 "이민정책은 장기적인 국익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데 이민의 정치화로 정책이 엉망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cool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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