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기사단, 새 단장 선임…교황청과 갈등봉합·관계정상화 나서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미얀마에서 콘돔을 배포한 사건을 둘러싸고 교황에 공개적으로 항명한 가톨릭 평신도 단체이자 주권국인 몰타기사단이 새로운 단장을 선출, 교황청과의 본격적인 갈등 봉합에 나섰다.
몰타기사단은 이탈리아 출신의 자코모 달라 토레 델 템피오 디 산귀네토(72)를 향후 1년 동안 조직을 이끌 새 단장으로 뽑았다고 30일 밝혔다.
달라 토레는 미술 사학자로 교황청 우르바노 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몰타기사단에는 1985년 합류했다.
교황청과 알력을 빚다가 지난 1월 사임한 매튜 페스팅의 후임으로 선출된 그는 앞으로 1년 동안 몰타기사단의 투명성 제고 등 개혁 작업을 감독하며, 교황청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끄는 중책을 맡게 됐다.
전임 페스팅 단장은 작년 12월 인공피임을 금지하는 가톨릭 교리를 깨고 미얀마에서 에이즈 등 질병 방지용 콘돔을 배포한 책임을 물어 알브레히트 폰 뵈젤라거 몰타기사단 부단장을 해임한 사건을 둘러싸고 교황청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다가 반 강제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시 페스팅 전 단장이 폰 뵈젤라거 부단장을 물러나게 하는 과정에서 "이는 교황의 뜻"이라고 거짓 구실을 내세운 사실을 알게 된 뒤 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명령했다.
그러나, 가톨릭의 대표적인 보수파인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을 등에 업은 페스팅 단장은 교황청의 조사는 주권 국가인 몰타 기사단에 대한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하며 교황에 대놓고 항명했다.
이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콘돔 배포와 연관된 해임을 둘러싼 갈등으로 비쳐진 당시 사건은 교황이 대표하는 가톨릭 진보 세력과 이에 불만을 품은 가톨릭 보수 세력 간의 대리전으로 인식되며 가톨릭 안팎의 이목을 끌었다.
금욕과 절제에 기반한 전통적인 성윤리와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중시하는 가톨릭 보수파는 자비에 기초해 개개인이 처한 상황을 판단할 것을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빈번히 충돌해왔다.
콘돔 사용에 있어서도 가톨릭 진보 세력은 인류의 생명과 보건 증진에 기여한다면 특정 상황에서는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보수파는 어떤 경우에도 콘돔 사용이 금지돼야 한다고 맞섰고, 양자 사이의 이런 간극은 몰타기사단의 항명 사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한편, 페스팅 전 단장은 새로운 단장 선출 과정에서 교황청과의 갈등이 재점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출 작업이 진행된 로마를 잠시 벗어나 있어 달라는 교황청의 요청에 응하지 않아 앙금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몰타기사단은 회원 1만3천500명, 직원과 자원봉사자 10만여 명을 거느린 채 세계 곳곳에서 빈민 구호, 병원 운영 등 자선 활동을 펼치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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