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美日 보란듯 아세안 무대 남중국해 외교전서 '완승'(종합)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노골적' 친중 행보 등에 업고 입지 확대
두테르테, 자신의 고향 다바오 방문한 中 군함 찾아 '우애' 과시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하루 일정으로 필리핀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의 최대 수혜자로 아세안 회원국도 아닌 중국이 꼽힐 정도다.
진통 끝에 정상회의 하루 뒤에 나온 의장성명에 역내 가장 큰 외교·안보 현안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사태와 관련, 중국의 뜻이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로비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노골적인 친중 행보가 빚어낸 것이다. 이를 놓고 일간 필리핀스타는 1일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에 무임승차권을 줬다고 보도했다. 다른 현지 언론들은 중국이 외교적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번 의장성명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한 국제중재 판결은 물론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과 군사기지화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이중 중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남중국해 매립과 군사 시설화 문제는 작년 9월 대표적 친중 국가인 라오스가 주재한 아세안 정상회의의 의장성명에도 담긴 '단골 사안'이었다.
중국은 필리핀 주재 자국 외교관들을 동원해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 막판까지 필리핀 관리들을 만나 남중국해 영유권 사태가 표면화되지 않도록 로비를 했다고 필리핀 언론들이 전했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을 다투는 베트남 등 일부 아세안 회원국이 의장성명에서 남중국해 매립과 군사기지화 문제를 빼는 데 반대했지만, 의장국인 필리핀이 밀어붙였다.
남중국해 영유권 국제중재 판결과 관련, '법적·외교적 절차를 완전히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는 문구가 의장성명 초안에는 담겼다가 최종 성명에서 빠졌다.
결국, 최종 성명은 "최근 남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관련해 일부 지도자들이 표명한 우려에 주목한다"며 "관련 당사국들이 상호 신뢰를 강화하고 자제력을 보이는 것은 물론, 상황을 악화할 수 있는 행동을 회피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정상회의 이전부터 "국제중재 판결을 거론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중국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여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이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 필리핀 경제 개발을 위해 중국의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작년 6월 말 취임과 함께 전통 우방인 미국에 등을 돌리고 중국과 경제·방위 협력에 박차를 가하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드러내놓고 중국에 손을 내민 것이다.
이런 두테르테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알베르토 델 로사리오 전 필리핀 외무장관은 중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향후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협상 때 활용할 수 있는 압박 카드를 버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국 내 부정적 시각에 아랑곳없이 1일에는 자신의 고향인 필리핀 남부 다바오 시에 정박 중인 중국 미사일 구축함 '창춘' 호를 찾아 양국 우의를 과시했다.
이 구축함과 프리깃함 '징저우' 호, 종합보급함 등 3척으로 이뤄진 중국 해군 함대는 아세안 정상회의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사흘간의 일정으로 필리핀을 방문했다. 중국 함대의 필리핀 기항은 7년 만에 처음으로, 남중국해 문제로 대립했던 양국 관계의 '해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오는 11월 차기 아세안 정상회의가 예정된 가운데 중국은 미국, 일본이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며 개입하는 남중국해 사태와 관련, 두테르테 대통령을 등에 업고 동남아에서 외교적 입지를 더욱 확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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