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 박물관 등록 의무화' 미등록 시설들 "걱정되네"

입력 2017-04-28 07:30
'국공립 박물관 등록 의무화' 미등록 시설들 "걱정되네"

등록요건 까다로워 11월까지 유예기간 내 등록 '난망'

미등록은 입장료 못 받아 '발등의 불'…부작용 우려도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자동차 박물관·성(性) 박물관·컴퓨터 박물관·커피 박물관·초콜릿 박물관 등 다양한 종류의 각종 박물관이 있어 '박물관 천국'으로 불리는 제주도.

박물관이 유행처럼 생겨났다가도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비슷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난립해 한때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에 한해 등록을 의무화하도록 개정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으로 인해 제주도는 물론 전국의 미등록 박물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등록 박물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故 고상돈 산악인의 유품 등을 전시한 한라산국립공원 산악박물관은 지난해 말 제주도에 부랴부랴 박물관 등록 신청을 했다.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에 한해 등록을 의무화하도록 개정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지난해 11월 30일부터 본격 시행됐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박물관 등록이 의무가 아닌 임의제로 운영됐기 때문에 굳이 등록하지 않아도 됐지만, 법 개정으로 인해 국공립의 경우 시행 후 1년 이내에 등록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한라산 관음사야영장 부지에 지하 1층·지상 1층, 전체면적 2천㎡ 규모로 조성된 산악박물관은 2015년 3월 문을 열어 산악인의 역사와 등반 변천사에 대한 정보 등을 제공하고, 산악인들이 기증한 102종 467점의 장비 등을 전시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제주도 박물관·미술관 진흥위원회는 지난 1월 16일 산악박물관에 대한 등록 심의를 진행했으나 박물관 기능을 수행하기에 일부 부족한 점이 있다며 보완을 하도록 요청, 재심의하기로 했다.





관람객에게 충분한 산악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전시기법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박물관 또는 미술관 등록요건은 최소 82㎡ 이상의 전시실, 60점 이상의 전시자료, 수장고, 사무실 또는 연구실·자료실·도서실 및 강당 중 1개 시설, 화재·도난 방지시설, 온습도 조절장치를 갖추고 학예사 1명 이상 고용해야 한다.

자료의 적합성, 자료수집의 적정성, 자료의 학술·예술·교육·역사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야 하는 등 상당히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의해 박물관 등록이 진행된다.

이 때문에 제주도·제주시·서귀포시 등 행정기관이 운영하는 일부 전시관 등은 뒤늦게 등록 신청을 하며 준비에 나서고 있다.

세계자연유산센터는 최근에야 등록 신청을 했으며, 항일기념관은 제주도에 등록 절차를 문의하는 등 준비하고 있다.

반면, 서귀포시가 운영하는 서복전시관, 제주시 항몽유적지 전시관 등은 박물관 등록 신청 준비조차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마다 운영적자를 보고 있는 서복전시관의 경우 제주도 차원의 공영관광지 운영평가에서 최하위권 수준의 평가를 면치 못하는 전시관으로, 박물관 등록 기준에 맞추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 "무리한 등록 오히려 부작용 우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으로 인해 제주도는 물론 전국 지자체가 운영하는 미등록 박물관·미술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술관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박물관의 범주는 매우 포괄적이다.

법은 자료관·사료관·유물관·전시장·전시관·향토관·교육관·문서관·기념관·보존소·민속관·민속촌·문화관·예술관·문화의 집·식물원·수족관 등을 모두 박물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 내 등록된 박물관과 미술관 등은 국립 1곳, 공립 16곳, 사립 66곳 등 모두 83곳이다.

제주도 내 국공립 시설 중 박물관 등록이 돼 있지 않은 시설은 5∼6곳 정도로 추정된다.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2014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출받은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 자료를 분석한 자료에는 2012년 말 기준으로 각 지자체 등에서 건립돼 운영되는 공립박물관 326곳 중 122곳(37.4%)이 미등록 상태로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각 지자체 등에서 건립돼 운영되는 공립박물관의 약 3분의 1 이상이 개정된 법에 따라 오는 11월 30일까지 등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법으로 정한 기간 등록을 하지 못할 경우 입장료를 받을 명목이 사라지게 되고, 사실상 운영을 포기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개정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각 지자체에서 선심성 또는 지역발전 명목으로 우후죽순 생겨나 적자에 허덕이는 각종 기념관, 전시관 등을 정리할 수 있는 방편으로 활용될 수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지역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악법'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또한 사설 박물관인 경우 국공립과는 달리 등록이 의무사항이 아녀서 박물관 등록 기준에 미치지 않더라도 버젓이 박물관 명칭을 쓸 수 있고, 현행법 상 이를 제한할 규정도 없는 실정이다.

한웅 제주도 문화정책과 문화산업담당은 "박물관 기준에 부합하는 시설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법에 따라 등록을 해야겠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는 곳인 경우 규모와 전시자료를 늘리고 학예사를 채용해 억지로 박물관 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장기적으로 규모를 조금씩 키워서 등록하는 방향으로 갈 수는 있겠지만 무리하게 진행할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전국적인 문제"라며 "군 단위 작은 전시관에서 학예사를 일일이 고용하고 소장품을 추가로 매입하다 보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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