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이주여성·근로자 도울 것" 법원 봉사자 울산 '페루댁'
울산지법, '결혼이주여성 통·번역 자원봉사단'서 유일한 남미 출신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외국에서 왔다고 법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안 되잖아요.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 여성과 근로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아비가일(Abigail·28·여)씨는 울산지방법원이 27일 창단한 '통역·번역서비스 자원봉사단'의 유일한 페루 출신 단원이다.
이 자원봉사단은 법원을 찾는 외국인 민원이 해마다 늘어나면서 각종 신청서 작성, 가정법원 출석 시 통역 등을 돕도록 울산지법이 전국 지방법원 중에선 최초로 결혼이주여성 등을 자원봉사자로 모집해 만든 것이다.
아비가일씨는 총 41명의 봉사단원 중에서 가장 먼 곳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사람이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단원은 모두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등 아시아 출신이다.
아비가일씨가 자원봉사단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 역시 낯선 한국땅에서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온 것은 페루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직후인 2009년. 먼저 울산에서 한국인과 재혼한 엄마를 찾아 멕시코와 일본을 경유해 28시간에 만에 인천공항에 발을 디뎠다.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랐지만 몇 개월 뒤 집안 사정으로 혼자 집을 떠나 부산의 그릇 제작 공장, 옷 만드는 공장 등에서 일하게 됐다.
"저나 다른 외국인을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사실 정 붙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말이 잘 안 통하니 오해도 생겼던 것 같고요"
공장을 떠나 과수원에서도 일했지만, 역시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자신이 적절한 임금을 받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주변에선 집주인이 전세금 돌려주지도 않고, 전세금 줬다고 우긴다거나, 일을 하도고 임금을 다 못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며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어도 누구에게 어떤 법적 도움을 받아야 할지 막막해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법원 봉사단에 들어가 활동하면 한국 법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되고, 저나 제 주변 친구들에게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고 말했다.
아비가일씨는 지난 2011년 지금의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그래도 든든한 조언자를 얻었다.
5살과 3살 된 딸도 키우고 있다.
봉사단에 들어간 또 다른 이유는 딸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어서다.
그는 "저나 제 딸들이 주변 사람들과 조금 다르게 생겼지만, 엄마가 항상 도전하고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진취적인 모습을 딸들이 보고 자랐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그는 울산지법을 찾는 스페인어권 민원인들을 돕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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