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에 항암제 장착시켜 암 치료 '유도미사일'로 활용

입력 2017-04-26 06:00
정자에 항암제 장착시켜 암 치료 '유도미사일'로 활용

독일 연구팀, 정자 추진력과 면역거부 없는 특성 이용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정자에 항암제를 장착시켜 여성 생식기관의 암세포만 정확하게 찾아가 죽이는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26일 과학매체 Phy.org와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독일 드레스덴 통합나노과학연구소(IIN) 과학자들은 정자를 일종의 '유도 미사일'로 활용, 자궁암이나 난소암을 치료하는 새로운 암 치료법의 실험실 내 시험에 성공했다.

이는 정자가 인체에서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체내 깊숙한 부위에 있는 난자를 정확하게 찾아가 침투하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항암제들은 많다. 문제는 약물의 독성이 암세포뿐 아니라 건강한 세포까지 병들고 죽게 하는 부작용이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항암제가 암세포에만 직접 작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왔으나 아직 획기적 성과는 많지 않으며 그나마 일부 암 종류에만 듣는다.

그 방법의 하나가 인체에 쉽게 침투할 수 있는 박테리아(세균)를 약물의 운송 도구로 삼는 것이다. 문제는 이 방법이 상대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으나 인체의 면역시스템이 세균을 '침입자'로 인식해 목표지점에 이르기 전에 파괴하는 것이다.

IIN 연구팀은 그 대안으로 정자의 특성에 주목했다. 정자 역시 다른 사람의 몸에는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긴 해도 면역시스템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

정자는 특정 당분 분자(당단백질)을 운반하지만 모든 인간의 면역시스템이 이를 받아들인다. 게다가 긴 꼬리 같은 편모를 이용, 무서운 추진력으로 헤엄쳐 나팔관에 들어간 뒤 난자 막을 뚫고 들어가 수정하는 성질이 있다.



정자의 이런 특성을 이용, 불임치료법 등 다양한 연구를 해온 IIN 팀은 독소루비신이라는 항암제 액에 정자를 몇 시간 동안 담가 약물을 흡수토록 했다. 이 약물은 암세포 성장에 필요한 효소인 토포이소머라아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암세포를 말려 죽인다.

그다음 단계로 정자의 머리 부분을 철분 용액으로 코팅된, 수 나노미터(㎛ 10억분의 1)크기의 아주 미세한 금속 '투구'로 덮었다. 이를 질 속에 주입하면 약을 실은 정자가 자궁경관 방향으로 나아간다.

정자에 '철 투구'가 있어 초음파 영상으로 이를 관찰하면서 자기장을 이용해 방향과 움직임을 조종해 암세포가 있는 부위로 정확하게 유도할 수 있다.

암세포에 도달한 다음엔 정자는 난자를 침투하는 것처럼 암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고 투구에 달린 4개의' 금속 팔'이 암세포에 달라붙게 해줘 약물을 분사하게 된다.

IIN 연구팀은 그동안 소의 정자를 이용해 실험실 내에서만 암세포에 도달토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철분 투구를 씌워 무거워진 결과 원래 정자의 유영속도의 절반으로 이동속도가 떨어졌으나 암세포를 찾아내고 정확하게 파괴할 수 있는 능력엔 문제가 없었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인간 정자를 이용한 실험과 생체 실험 등을 진행할 것이라면서 5년 안에 정자를 이용한 난소암과 자궁암 치료법을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치료법은 남녀 모두의 다른 암 치료에도 활용될 수도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코넬대학교가 운영하는 국제 과학 논문 웹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최근 실렸다.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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