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참전용사 미망인의 한국어 사랑, 태국내 최고령 토픽 응시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동남아 한류의 중심' 태국에서 최근 치러진 한국어 능력 시험(토픽)에 팔순을 바라보는 한국전 참전용사의 미망인이 도전했다.
24일 주태국 한국교육원(원장 윤소영)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치러진 토픽 시험 1급 시험에 한국전 참전용사의 부인 왕싸롯 오라싸(77) 할머니가 응시했다.
지금까지 치러진 역대 태국내 토픽 시험의 최고령 응시자로 기록된 왕싸롯 할머니는 비록 성적이 기준에 미달해 고배를 마셨지만, 합격선에 근접한 점수를 받았다.
방콕 외곽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마을에 아들딸과 함께 사는 왕싸롯 할머니는 주말이면 한국어 교육센터에 나가 손자뻘 아이들과 한국어를 배운다.
5년간 수학했음에도 기본적인 인사 이외에 구사할 수 있는 한국어 문장은 아직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태국 해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예비역 대령 남편(10년 전 사망)이 사랑했던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이 쓰는 언어에 대한 애정만큼은 누구보다 깊다.
왕싸롯 할머니는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지 못해서 그런지 나이가 든 지금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좋다"며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남편이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준 아리랑 노래와 친절한 한국사람들이 나를 한글 학교로 이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드라마나 한국 노래를 들으면 한국어를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TV를 어떻게 켜는지도 몰라 그럴 수가 없다"며 "그래도 한국어를 배워 마을을 방문하는 한국인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는 꿈은 꼭 이루고 싶다"고 덧붙였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했다는 왕싸롯 할머니는 "한국은 너무 깨끗해서 좋았다. 사람들도 너무 친절했다"고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을 전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카메라 앞에 선 할머니는 다음에는 한국어로 인터뷰하자는 기자의 제안에 손사래를 치면서 "이제 토픽 시험을 치는 것도,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힘에 부친다. 계속 노력하겠지만, 이젠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를 잘 배워 한국인들과 소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남아 한류의 중심 태국에서는 2018년 학년도부터 대학입시(PAT)에 한국어가 제2외국어 선택과목으로 채택되는 것을 계기로, 한국어를 정식 과목으로 채택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한국어 시험 응시생들도 대폭 늘고 있다.
태국 최고 명문대학인 왕립 쭐라롱껀 대학교가 한국어 전공을 개설했고, 태국의 수재들이 몰리는 최고 명문 중등학교인 '뜨리얌 우돔 쓱사'(Triam Udom Suksa)도 최근 35명 규모의 한국어반을 개설했다.
토픽 시험 응시자 수도 지난 2014년 1천558명에서 2015년 1천924명, 지난해에는 무려 4천190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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