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포대 지고 찾아가는 맞춤형 복지팀…"자구 노력 있어야"

입력 2017-04-23 12:00
쌀 포대 지고 찾아가는 맞춤형 복지팀…"자구 노력 있어야"

읍면동 복지허브 '선도지역' 소하1동 누리복지팀 따라가 보니

(광명=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주민센터 창구에서 주민의 복지 급여 등 서비스 신청을 받아 처리하는 대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이웃을 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찾아내 찾아가는 '읍면동 복지허브' 사업이 2년째를 맞았다.

읍면동 복지허브 사업은 현재 전국 1천423개 읍면동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올해 연말까지 전체 3천502개 읍면동의 64%에 해당하는 2천246곳이 복지허브 지역으로 전환된다.

지난 20일 경기도 광명시 소하1동의 맞춤형 복지팀인 누리복지팀의 활동을 따라가 봤다.

소하1동은 인구 3만2천명 중 26%에 달하는 8천500명이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 한부모 가정, 장애인 등 복지 대상자인 지역이다.

지난해 3월 복지허브 선도지역으로 선정돼 인근 소하2동까지 포괄하는 권역형 사업의 중심동으로 운영되다가 올해 4월부터 단독으로 운영되는 기본형으로 전환됐다.

누리복지팀은 담당 공무원 외에 민간의 방문간호사와 법률 전문가, 사례 관리사, 직업 상담사가 팀을 이뤄 민원인에게 필요한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 쌀 포대 들고 가정 방문

길은정 누리복지팀장과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쌀 한 포대를 차에 실었다. 갑자기 기초생활수급이 끊긴 가정에 방문 상담을 나서는 길이었다.

재개발을 앞둔 한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운 뒤 쌀 포대를 지고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단층집들이 모여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진입로는 워낙 좁아 주변 가옥 벽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바람에 잠시 길을 헤매기도 했다.

한참을 걸어올라 재래식 화장실이 바깥에 있는 단층집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건물을 돌아 5개 쪽방 중 하나인 A씨(50대)의 집에 들어섰다.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원을 내는 집이었다.

A씨는 남편이 돈을 벌어보겠다며 25만㎞나 운행한 중고 봉고차를 60만원에 산 것이 소득으로 잡히는 바람에 기초생활 수급이 정지돼 막막하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공공근로 계약이 끝나 실업급여로 생활했지만, 그것도 이번 달이 마지막이라 당장 생계를 이을 방법이 없고, 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병원비가 가장 큰 부담이라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고등학생인 자녀의 교육비도 1분기는 학교장 추천으로 지원받았으나 앞으로가 문제였다. A씨는 다시 공공근로를 신청해 면접을 기다리고 있지만, 탈락할 경우 다른 일자리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복지팀은 지원이 필요한 주민을 찾기 위해 취약 지역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통장 등 이웃들로부터 정보를 받기도 하지만, 아파트 임대료나 건강보험료가 체납된 가구, 전기나 수도 끊긴 가구를 직접 찾아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연락을 시도해도 자신의 처지가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이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고 길 팀장은 전했다.



◇ 가정폭력·아동학대 대응부터 심리상담, 법률지원까지 통합사례 관리

누리복지팀의 일은 방문 상담을 통해 만난 주민이 공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행정 처리를 해주거나, 민간 서비스를 연계해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취약 계층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에 그치지 않고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그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 사례가 훨씬 더 많다.

그럴 때는 민간의 전문가들까지 함께 모여 해결 방안을 찾는다.

이날 소하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민·관 통합사례회의에는 정신건강증진센터와 가정폭력상담소, 심리상담 기관, 취약 계층 아동 지원단체인 드림스타트, 광명시 무한돌봄센터 관계자와 법무부 파견 변호사 등 민간 전문가들이 모였다.

길 팀장은 어린 자녀를 둔 40대 여성인 B씨의 상황을 설명했다.

B씨 부부는 신용불량자로 통장이 압류됐고, 채무가 얼마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으며 주거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게다가 B씨는 성폭력 피해 경험으로 트라우마가 있고, 가정폭력까지 겪으며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길 팀장은 무엇보다 B씨가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심하고 편집증 성향을 보이면서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며 조언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B씨에 대한 심리상담 사례와 가정폭력 상담 전례 등을 공유하고, 채무 해결을 위한 신용회복 상담, 3살밖에 안 된 어린 자녀를 위한 부모교육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또 심리적 안정을 위해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데 우선 도움을 주고, 복지팀과 B씨가 함께 문제 해결 방법을 논의하고 거기서 정한 약속을 지키되 일방적이고 지나친 심리적 지지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런 통합사례회의는 매달 한 차례씩 열리며, 정신질환이나 학대, 폭력으로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정도의 위험 등 안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고난도 사례는 다시 시에서 운영하는 '솔루션 회의'로 올라가 경찰 등 사법기관이 개입하게 된다.

광명시 무한돌봄센터 최준희 팀장은 "복지팀과 대상자의 합의로 목표를 세우고 공적 서비스에서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지만, 개인의 자구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암 투병을 하던 남편과 사별하고 병원비 등 부채를 떠안은 채 자활 근로로 아들과 함께 생계를 잇는 C(60)씨는 누리복지팀의 사례 관리사인 권은희 씨를 두고 "평생 잊지 못할 은인"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때 따돌림과 학교 폭력을 당하고 결국 고1때 자퇴를 한 뒤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버린 아들이 C씨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남편마저 그런 아들에게 주먹을 휘둘러 아들은 대인관계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청소년 복지관이나 상담센터도 보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찾아오고 전화와 문자를 시도하며 다가서는 권 관리사에게는 결국 마음을 열었고, 권 관리사가 연결해 준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꿈드림센터'를 통해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일자리까지 얻게 됐다.

복지팀의 지원으로 C씨는 자활 근로를 계속할 수 있었고, 카드업체와 상담을 통해 부채를 분납 상환하기로 했으며, 생필품과 보일러 교체 등 물품 지원도 이뤄졌다.

C씨는 "며칠 전 아들이 첫 월급을 받아왔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정말 기뻤다"며 "아들이 밖에 나와 사람을 만나고 일하고 웃게 된 게 가장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소하1동)에서 아들을 낳고 많은 도움을 받아 수급자에서 차상위 계층이 됐기 때문에 여기를 떠날 수 없다"며 "특히 아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몇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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