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 노가리서 64년 역사 군만두까지…서울 도심투어 '을지유람'

입력 2017-04-22 08:09
천원 노가리서 64년 역사 군만두까지…서울 도심투어 '을지유람'

서울 중구, 1년간 1천 명 호응 속 주 2회→매일 변경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쏟아지는 태양 볕을 뒤로 한 '쉬익쉬익' 기계 소리와 천원짜리 한 장에 맛볼 수 있는 장인의 노가리. 그리고 80년 넘도록 이어져 오는 명품 수제화 가게까지.

22일 서울 중구에 따르면 이 같은 도심 속 숨은 '보물'을 만날 수 있는 을지로 투어 프로그램 '을지유람'이 지난해 4월 첫선을 보인 이래 최근 출범 1주년을 맞았다.

혹서기 8월과 혹한기 12∼2월은 운영하지 않았음에도 지난 1년간 1천 명이 넘게 다녀갈 정도로 호응이 좋다. 이 때문에 당초 주 2회 운영되던 프로그램은 지난해 6월부터는 매일 관광객을 맞고 있다.



을지유람은 을지로3가역 3번출구 앞 타일·도기 특화거리에서 출발한다. 타일·도기거리, 노가리골목, 공구거리 등 특화거리, 맛집, 서울미래유산 등을 걸어다니며 두루 둘러보는 코스다.

140여개의 타일·도기 상점이 모여 있는 곳답게, 인근 버스 정류장은 '변기'로 좌석이 만들어져 눈길을 끌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유서 깊은 식당과 가게들이 줄줄이 관광객을 맞는다.

을지로3가 5-9번지에 자리했다 해서 이름 붙여진 '오구반점'은 1953년 오픈 이래 64년을 이어 온 유서 깊은 중국음식점으로, 군만두가 유명하다. 창업자는 식당 이름을 따라 아들 이름까지 '오구'라고 지었는데, 그가 바로 현재 식당의 사장이다.

바로 인근에는 1936년 문을 연 이래 4대에 걸쳐 수제화 외길을 걸어온 송림수제화가 있다. 현존하는 수제와 업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으로, 석고로 발 모양 본을 떠 맞춤 제작을 한다.

한국전쟁 이후 영국군 군화를 개조해 한국 최초로 등산화를 만들어 유명세를 탔고,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한 허영호 대장의 등산화도 만들었다. 2015년 12월에는 서울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점심시간 군침을 돌게 하는 맛집들이 속속 등장한다.

1973년 이래 설렁탕으로 인기를 끈 이남장, 그때 그 시절 추억을 간직한 원조녹두, 반세기 넘도록 한 자리를 지켜온 을지다방, 의정부식 평양냉면의 '자존심' 을지면옥,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골집으로 잘 알려진 곱창 전문점 양미옥 등을 이 근방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특히 수십 년은 됨직한 간판에 말린 북어 머리가 잔뜩 매달린 우화식당은 그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사진 찍기에도 좋다.

퇴근 후 저녁 시간에는 시원하게 맥주 한 잔 즐기기 좋은 '노가리 골목'이 기다리고 있다.

이 근방 13곳의 호프집 가운데에서도 '한국의 옥토버페스트'라는 별명이 붙은 만선은 한 마리당 천원 밖에 하지 않는 노가리로 명성이 높다.

이곳에서는 오랜 기간 일한 '장인'이 언 노가리를 가져다 기계로 때리고 누른다. 손으로 일일이 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기에 하루 작업량이 한정돼 있다.

노가리는 마리당 원가가 1천200원이지만, 이곳의 자랑인 중독적인 맛의 고추장 소스 덕에 맥주에 자꾸 손이 갈 수밖에 없어 매출 걱정은 없다고 한다. 이곳 사장은 하루 팔리는 노가리는 1천마리, 맥주는 2천 잔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손글씨 간판이 근사한 암소등심구이 전문점 통일집과 50년간 돼지갈비를 구워온 안성집을 지나가는 골목에는 '위이이잉' 기계 소리와 쇳가루 냄새가 가득했다.

이 가운데 신진정밀조각은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에 들고간 '등고선 측정기'를 만든 곳이다. 사람 얼굴을 촬영해 높낮이를 분석한 후, 우주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파악하는 기계다.





기계 내음을 뒤로하고 청계천으로 나가면 김수근이 설계한 우리나라 최초 주상복합단지 세운상가가 나온다.

신성덕 해설사는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인다는 뜻에서 '세운'으로 이름 붙였다"며 "서울시가 추진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에 따라 내년이면 이 위로 공중보행교가 만들어진다"고 소개했다.

세운상가는 전자·전기 산업의 '메카'였던 경험을 살려 청년 스타트업·메이커와 시민문화공간 등과 결합해 창업 허브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다음 달에는 우선 세운∼대림상가 구간 보행 데크 옆 난간 인근에 '세운 메이커스 큐브'라는 이름으로 창업 공간 29곳이 조성된다.

산업화 과정을 고스란히 품은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는 예술가에게도 영감을 불어넣었다. '도둑들'이나 '피에타' 같은 유명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마지막으로 둘러보는 산림동 일대는 빈 점포를 싼 가격에 제공해 청년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중구 관계자는 "을지로는 한국전쟁 때 군수용품, 정전 후 조명·타일 도기·가구, 이후 섬유 등을 생산하며 호황을 누렸다"며 "못 만드는 것이 없던 이곳은 이제 도심 재창조라는 시대의 흐름에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 변화가 찾아오기 전에 을지로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 을지유람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을지유람 투어 신청은 중구 홈페이지(www.junggu.seoul.kr) 을지유람 메뉴에서 하면 된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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