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 선생 탄생150주년 기념식…"독립된 조국서 편히 쉬시길"
전 재산 팔고 여섯 형제와 항일독립운동…1932년 일제 고문 끝에 옥사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전 재산을 팔아 항일독립운동을 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탄생 150주년 기념식이 21일 서울 중구 YWCA 회관에서 열렸다.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사업회'는 이날 오후 이회영 선생 여섯 형제의 생가터인 YWCA 회관 강당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박원순 서울시장,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과 유족인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걸 국회의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윤 전 장관은 이회영 선생이 1913년부터 1918년까지 국내에 잠입해 윤 전 장관의 선친인 윤복영 선생 자택에 은거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한 사실 등 이회영 선생의 업적을 소개했다.
윤 전 장관은 "철저하게 은폐하기 위해 이회영 선생은 방안 병풍 뒤에 숨어서 기거했었다는 얘기를 집안 어른들에게서 들었다"며 "이회영 선생의 부인인 이은숙 여사도 사랑채에 기거했는데 당시에는 '북경 아줌마'라고 불렀고, 해방 후에야 여사인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상봉 성균관대 미술과 교수는 한복을 입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 이회영 선생의 초상화를 그려 우당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이 교수는 "이회영 선생의 사진이 모두 중국식 두발과 복식이었다"며 "독립된 조국에서 우리 옷을 입고 편히 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복 차림의 밝은 인상으로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기념식에서는 탄생 150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우표 소개도 이뤄졌다. 앞서 우정사업본부는 이회영 선생 기념우표 56만 장을 제작했다.
1867년 이조판서 이유승 대감의 4남으로 태어난 이회영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 반대운동을 하고 1906년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했다.
이후 1910년 이회영 선생 여섯 형제 가족 40여 명은 전 재산을 팔아 현재 화폐가치로 600억 원에 달하는 독립운동 자금을 가지고 만주로 망명했다.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10년 동안 3천500여 명을 양성하고, 1924년 항일운동 행동 조직 '의열단'을 후원했다. 또 김좌진 장군과 함께 '재만한족연합회'를 조직했다.
이회영 선생은 1932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옥사했다.
정부는 이회영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중국 정부는 2000년 이회영 선생을 '항일혁명 열사'로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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