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쌀]③ '보릿고개 끼니 걱정?' 이제 넘쳐나는 쌀 걱정
'생산↑, 소비↓' 수급 불균형…재고 넘치는데 의무수입물량 한해 수십만t
쌀값 폭락, 관리비 급증, 변동직불금 확대 등 문제 심각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1970년대까지만 해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에 소고깃국을 먹어보는 게 소원인 사람이 적지 않았다.
경제 발전으로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지금은 아득한 옛날얘기가 됐다.
◇ 재배면적 축소에도 생산성↑…소비는 갈수록 줄고
경지 면적은 계속 감소했지만, 농업기술 발달로 쌀 생산량은 줄지 않는 반면 외국 쌀 수입과 소비 감소로 재고량은 크게 늘었다.
보릿고개,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아도는 쌀 문제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생산 감소량보다 소비가 줄어드는 폭이 더 커서 해마다 초과 공급이 발생한다. 1970년 전국의 논 120만3천㏊에서 3천93만t의 쌀을 생산했다. 10a당 생산량이 330㎏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77만9천㏊에서 419만t을 수확해 10a당 540㎏을 생산한 셈이다.
재배면적이 54.4% 줄었지만, 생산성은 63.6%나 높아지면서 쌀 생산량은 오히려 더 늘었다. 다수확 품종이 보급되고 재배 기술이 좋아지면서 재배면적이 감소해도 수확량은 줄지 않는다.
여기에 서구식 식생활과 건강식 선호 등으로 소비 양상이 바뀌면서 쌀 소비가 감소했다. 1985년 국민 한 사람이 1년 동안 평균 128.1㎏의 쌀을 소비했으나 2015년에는 62.9㎏으로 떨어졌다. 30년 만에 1인당 소비량이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식품소비 행태 조사(2014) 결과를 보면 순수하게 쌀밥만 먹는다는 응답자는 30.5%에 그쳤다. 잡곡밥을 먹는 사람은 40.1%에 달했고 백미와 현미 혼합밥을 먹는다는 답도 24.0%나 됐다.
2005년 이후 10년간 연평균 초과 공급량은 약 34만t. 문제는 과거보다 초과 물량이 더 늘어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과 공급에 의한 수급 불균형이 단기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굳어진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쌀 넘쳐나는데 밥쌀 수십만t 의무수입
쌀 관세화 유예 대가로 늘어난 의무수입 물량도 재고 증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정 이후 도입하기 시작한 의무수입량은 1995년 5만1천t에서 2014년에는 40만9천t으로 늘어났다.
2005년부터 밥쌀이 의무적으로 수입되는 것도 문제다. 2004년 재협상 결과, 의무수입량 일부를 밥쌀용으로 도입하기로 해 이듬해 10%를 시작으로 2014년에는 30%인 12만3천t을 수입했다.
쌀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황에서 의무수입은 재고 누적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입쌀 재고는 2010년 이후 20만∼30만t 수준이었으나 2014∼2015년은 50만t 안팎까지 증가했다.
남아도는 쌀은 여러 문제로 이어진다.
재고량이 많으면 방출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산지 거래가 위축돼 가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수확기에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산지 유통업계가 원료곡을 매입해 시장이 안정되는데 가격 불확실성이 높으면 매입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 수확기에는 흉작에도 불구하고 재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유통업체가 적극적으로 매입에 나서지 않았다.
◇ 재고 증가→쌀값 하락·관리비·변동 직불금 확대 '악순환 되풀이'
지난해 수확기 산지 평균 쌀값은 80kg에 12만9천711원까지 급락했다. 산지 쌀값이 농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3만원 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95년 이후 21년 만이다. 쌀농사 소득률도 50.2%로 1966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낮았다.
재고가 쌓이면 당연히 관리 비용도 늘어난다. 재고 10만t을 관리하는 데 연간 316억원이 들어간다고 농촌경제연구원은 추정한다.
보관료 61억원과 금융비용 35억원이 소요되고 고미(묵은쌀)화에 따른 가치 하락 금액이 220억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재고 관리 비용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커지며, 사료용이나 주정용으로 처리해도 10만t당 1천569억∼1천690억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재고 증가는 가격 하락을 초래해 쌀 소득 보전을 위한 정부의 변동직불금 지출도 커진다.
변동직불금은 쌀 가격 하락에 따른 농가 소득 감소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가격이 정부가 정한 목표치 이하로 떨어지면 차액의 85%를 지원한다. 변동직불금은 논 면적에 따라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고정직불금과 달리 쌀 생산과 연계되기 때문에 생산량을 늘리려는 인센티브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일부에서 나온다.
생산량 증가 등으로 가격 하락 폭이 클 경우 변동직불금 지원 단가도 높아져 지급 총액이 크게 늘어나 재정 부담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김태훈 연구위원은 "예전에는 쌀이 2년 연속 풍작인 경우가 거의 없고 흉년이 들 때 재고 물량을 적극 활용해왔다"며 "2014∼2016년에는 작황도 좋고 태풍 피해도 별로 없어 3년 연속 대풍이 들어 재고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전국쌀생산자연합회 이효신 회장은 "재고가 넘치는데도 해마다 쌀을 수입하고 밥쌀까지 들여오는 상황이 과잉 재고와 쌀값 폭락의 진짜 원인"이라며 "정부는 이런 현실을 반영해 식량 안보를 지키고 농촌을 살리는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k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