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택배 대리수령 의무화' 입법, 논란 끝에 폐기(종합3보)

입력 2017-04-20 17:59
수정 2017-04-20 18:02
'경비원 택배 대리수령 의무화' 입법, 논란 끝에 폐기(종합3보)

우정사업본부 "우편물 반환율 낮추려는 취지였다"

주택관리업계 "경비원 업무는 주택 안전관리…'을'이니 택배에 분리수거까지"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근무하는 A씨는 명절만 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택배가 쉴새 없이 쏟아져 경비실에 발 디딜 틈 없을 정도인데 야속한 입주자들은 몇 번을 인터폰을 눌러 독촉해도 서두르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A씨는 "어떨 때는 택배 기사들이 경비실부터 찾아온다"며 "배달이 잘못되거나 내용물이 상하면 괜히 난처한 상황이 될 때도 많다"고 말했다.

택배 대리 수령은 비단 A씨뿐만 아니라 경비원이라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반갑지 않은 허드렛일이다.

그런데 경비원의 우체국 택배와 등기 대리 수령을 법으로 정하려는 입법이 추진돼 논란이 일었다.

결국 법제화는 무산됐지만 이를 계기로 경비원의 처우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 전망이다.

20일 국토교통부와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작년 10월 입법 예고했던 우편법 시행령 개정안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

원래 이 법안에는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수취인에게 우체국 택배나 등기 등 우편물을 직접 배달하지 못할 때 관리사무소나 경비실에 맡길 수 있는 근거가 담겼다.

개정안은 관계부처 협의와 규제심사를 거쳐 법제처 심사까지 올라갔으나 최근 제동이 걸렸다.

뒤늦게 법안 내용을 알게 된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등이 민원을 제기했고 국토부도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계부처 협의 공람이 돌 때는 몰랐는데 민원을 받고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며 "경비원의 업무에 우체국 택배 등의 수령 의무를 법으로 명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계약에 의해 택배 수령 등을 정식 업무로 했다면 모를까 우편법으로 계약 외 일을 의무화하는 것은 경비원의 권익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경비원이 택배를 대리 수령하고 있다.

하지만 법으로 의무가 생기게 되면 택배 분실이나 파손 등 상황에 대한 책임을 경비원이 져야 한다.



우체국 택배 수령이 의무화되면서 일반 택배도 자연스럽게 경비원이 책임지고 챙겨야 할 업무가 될 수 있다고 주택관리업계는 우려했다.

논란이 일자 우정사업본부는 결국 문제가 된 부분을 시행령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우체국 택배나 등기 등은 우편물에 쓰인 주소지에만 배달하게 돼 있지만 일부 고가 아파트는 출입 자체가 안 되는 곳도 있어 어려움이 많다"며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경비업계의 반발을 감안해 문제된 부분을 삭제키로 했다"고 말했다.

우정본부는 우편 사업의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법령 개정을 추진했지만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경비업계의 반발에 직면해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그러나 2014년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 자살 사건 이후 아파트 경비원이 받는 부당한 처우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에 지난달에는 경비원에게 업무 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할 수 없도록 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택배 대리 수령이나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등의 잡무는 별도 계약이 없어도 경비원의 당연한 업무로 간주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입주자들의 차량 주차 관리를 경비원에게 맡기는 일부 아파트 단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주택관리사협회 관계자는 "원래 경비업법에는 경비원이 건물 안전관리 업무 외에는 하지 못하게 돼 있다"며 "하지만 관행상 택배도 받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하고 있는데, 이런 허드렛일을 아예 법제화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다.

bana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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