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한을 풀겠다" 4·3 수형 피해자, 70년 만에 재심청구
생존자 18명 청구서 제주지법에 제출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눈을 영영 감기 전에 수형인이라는 억울한 한을 풀어야겠습니다."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 출신인 양근방(85) 할아버지는 19일 제주지법에서 열린 '제주4·3 수형 희생자 불법 군사재판 재심청구'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양 할아버지는 1947년 7월 5일 육군본부에 의해 설치된 고등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고 복역했다.
당시 가족들이 군경의 과잉진압에 희생된 뒤 홀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전과자가 됐다.
그는 "빨갱이니, 좌익이니, 삼팔선이니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살았다"며 "출소 후에는 나 때문에 자식들이 연좌제에 묶여 직장다운 직장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 할아버지와 같이 4·3 당시 불법 계엄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수형인이 된 피해자들이 진실을 바로잡고 명예회복을 위해 70년 만에 이날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청구인은 수형 희생자 중 현재 생존한 임창의(97·여)·정기성(96)·오계춘(97·여)·조병태(89)·박동수(85)·김경인(86·여)·김순화(85·여)·김평국(88·여)·박내은(87·여)·박순석(90·여)·부원휴(89)·양일화(89)·오영종(88)·오희춘(85·여)·한신화(96·여)·현우룡(83)·현창룡(86)씨 등 18명이다.
이들은 주로 1947∼1949년 내란죄 등의 누명을 쓰고 징역 1년에서 최대 20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4·3 수형인들은 영장 없이 임의로 체포됐고 재판 절차 없이 교도소로 가기도 했다. 공판조사서나 판결문조차 존재하지 않은 일도 있다.
불법 계엄 군사재판으로 사형과 징역형을 선고받은 희생자는 2천530여명에 달한다.
임문철 4·3도민연대 상임고문은 "군법회의는 법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국가 폭력에 해당한다"며 "재심청구는 4·3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 때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군경의 진압 등 소요사태 와중에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적게는 1만4천, 많게는 3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현재 잠정 보고됐다.
피해자 중 수형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군부대나 경찰관서에 끌려간 뒤 투옥돼 상당수가 사형되거나 행방불명됐다.
수형 생존자들도 억울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평생을 살아왔다. 이들의 자녀들은 연좌제로 인해 공무원 임용이 불가능했다.
법원이 재심청구를 받아들이면 형사합의부에서 재판이 70년 만에 재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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