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와 경쟁'…비룡 춤추게 하는 힐만 감독의 '토털 베이스볼'
고정 라인업없이 야수 자원 풀가동…매너리즘에 빠진 팀에 활력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지난주 프로야구를 강타한 사건은 SK 와이번스의 급반등이다.
정규리그 개막 후 6연패에서 허우적거리던 SK는 5연승 포함 7승 1패의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바닥권에서 공동 5위로 도약했다.
비룡 돌풍의 중심에는 KBO리그 사상 두 번째 외국인 사령탑인 트레이 힐만(54) 감독이 있다.
부진에 허덕이던 중심 타자 정의윤이 15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홈런을 친 뒤 힐만 감독의 가슴에 주먹을 날린 장면은 현재 SK 분위기를 압축하는 상징이 됐다.
이 일에 앞서 힐만 감독이 정의윤에게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나를 쳐도 좋다"고 말한 일화가 전해지자 취재하던 언론과 구단 관계자들은 일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제 '불경스러운' 짓을 실천한 정의윤의 행동에 놀라워했다.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선수와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고 가슴팍으로 날아오는 선수의 주먹을 호기롭게 받는 게 힐만 감독이 보여준 전부는 아니다.
이런 행동으로 선수들과 벽을 허물어 팀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건 사실이나 힐만 감독이 가져온 변화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게 SK 구단 관계자의 평가다.
이 관계자는 17일 "바깥에선 힐만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만 보지만, 내부에서 볼 땐 힐만 감독이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자극해 경쟁을 유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전했다.
단적인 예가 1군 엔트리에 있는 야수 14명을 골고루 기용하는 것이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은 힐만 감독은 6연패 후 침체한 분위기를 바꾸고자 앞장섰다. 멋지게 기른 수염을 말끔하게 정리한 것이다.
염경엽 SK 단장은 이를 보고 "짠했다"고 했다. 자신도 감독일 때 시즌 중 8연패를 겪었지만, 개막과 함께 당한 6연패의 충격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힐만 감독은 좋지 않은 분위기가 길게 이어지지 않도록 여러 수단을 동원한다. 고정 라인업을 고집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화와의 주말 3연전을 모두 쓸어담을 때 백업인 이대수, 나주환이 맹타를 휘둘렀다. 둘은 21타수 9안타, 득점 6개, 7타점을 합작하며 타선에 불쏘시개 노릇을 했다.
이대수는 유격수 박승욱과, 나주환은 2루수 김성현과 포지션을 나눠보는 사이다. 경험을 앞세운 두 베테랑은 주전 경쟁에 붙을 붙였다.
힐만 감독은 또 컨디션 난조로 고전하던 정의윤을 4번에서 빼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거포 김동엽을 과감하게 기용해 성공을 거뒀다.
간판타자 최정을 제외하고 전 포지션이 경쟁 체제로 돌아가면서 선수들의 출전 경기 수는 엇비슷해졌다.
적시에 이뤄진 KIA 타이거즈와의 4-4 트레이드로 SK에 새 둥지를 튼 포수 이홍구와 외야수 노수광도 전력을 살찌우는 데 힘을 보탰다.
SK의 고위 관계자는 "주간 단위로 보면 선수들의 출전 경기 수가 비슷하다는 얘기는 곧 길게 보면 전력 격차 해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라면서 "그간 매너리즘에 빠졌던 선수단에도 힐만 감독의 용병술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외국인 타자 대니 워스와 외국인 투수 스콧 다이아몬드가 가세하면 SK의 전력은 더욱 튼실해진다. 전원이 싸우는 힐만 감독의 토털 베이스볼이 본 궤도에 접어들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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