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우조선 자율구조조정…손실 최소화 결론
"채무조정안 수용, 가입자 이익 최우선 고려한 결과"
"분식 손해배상 소송은 별개로 추진"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국민연금공단이 17일 진퇴양난 속 장고(長考) 끝에 대우조선해양[042660] 채무조정안을 전격 수용했다. 이는 대우조선의 자율 구조조정이 회사채 투자 손실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이날 자정이 지나 보도자료를 통해 대우조선의 자율적 채무조정 방안에 대해 찬성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며 "채무조정 수용이 기금의 수익 제고에 더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 찬성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대우조선 회사채 규모는 3천887억원에 달한다.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이 제시한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안을 수용하면 이 가운데 50%는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를 3년 연장해야 한다.
삼정회계법인의 실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의 투자자금 회수율 예상치는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이 성공하면 50%, 채무 재조정이 무산돼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Pre-packaged Plan)에 돌입하면 10%, 청산되면 6.6%다.
이를 근거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국민연금이 채무조정안을 수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압박해 왔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것은 만기를 연장하는 나머지 50% 회사채의 상환이 불확실하다는 자체 분석 결과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12일 "대우조선이 배를 건조해 대금을 받더라도 원가에 미치지 못해 적자가 지속할 우려가 상당하다"며 "선박 건조대금도 시중은행의 선수금환급보증(RG)부터 갚게 돼 있어서 6년 만기 회사채에 대한 만기상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형평성 측면에서 불합리하다는 판단 역시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을 선뜻 수용하지 못하게 했다.
우선 금융당국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100%, 시중은행 80%, 사채권자 50%로 출자전환 비율을 제시했다.
하지만 산은과 수은, 시중은행의 RG채권까지 포함하면 이번 구조조정안에 따른 출자전환비율은 산은과 수은 9%, 시중은행 20%, 사채권자 50%로 크게 달라진다.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에게 불리한 출자전환 비율이라는 것이다.
채무 재조정안이 수용돼 별 차질 없이 RG채권이 상환되면 산은·수은과 시중은행의 부담은 애초 제시한 출자전환 비율이 대폭 줄지만, 사채권자는 그대로 50%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의 총 부채규모 18조6천억원 가운데 은행들이 보유한 RG채권은 12조6천억원에 달한다"면서 "채무조정안이 성사돼 자율 구조조정에 돌입하면 내년 말까지 이 중 67%가 해소된다"고 분석했다.
산은과 수은 입장에서는 당장 최대 2조9천억원을 쓰면 12조6천억원의 67%에 해당하는 8조4천여억원을 1년 만에 회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남는 장사다.
반면 사채권자들은 회사채의 절반은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절반 역시 3년간 묶인 뒤 2020년 7월 이후부터 3년간 분할 상환받게 된다. 이는 형평성 차원에서 큰 문제라는 게 국민연금의 입장이었다.
자율 구조조정을 했을 때 대우조선의 회생을 얼마나 확신할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황 개선 여부, 선박 발주 추가 취소 가능성 등 변수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보수적으로 가정하면 대우조선 보유 채권 절반의 불확실한 회수를 바라며 3∼6년을 기다리는 것보다 보유 물량을 전액 바로 손실 처리하고 넘어가는 게 합리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지난 5일 첫 투자위원회를 연 뒤 밝힌 입장에서 "대우조선의 재무상태와 기업계속성 등에 대한 의구심이 있어 현 상태로는 수용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달 23일 금융당국과 산은의 대우조선 구조조정 방안 발표 이후 17∼18일 대우조선 사채권자 집회 직전까지도 쉽게 결정을 못 내린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그러나 지난 13일 이동걸 산은 회장이 국민연금과 협상 의지를 밝히며 같은 날 저녁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과 전격 회동이 성사됐고, 이후 사흘간 밤낮 구분 없이 진행된 양측의 실무협상 끝에 국민연금은 결국 채무조정안 찬성 결정을 내렸다.
전날 저녁 산은의 최후 제안이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손실을 최소화할 방안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산은의 최후 제안에는 회사채 상환을 위해 별도의 계좌(에스크로 계좌)를 만들어 만기가 돌아오기 전에 미리 돈을 예치해두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회사채의 청산가치 분에 해당하는 1천억원을 우선 제공하고 대우조선의 상황이 개선되면 회사채의 우선 상환을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산은은 이를 위해 내년부터 매년 대우조선을 정밀 실사하기로 했다.
이런 내용이 대우조선의 회생 가능성을 직접 높이는 것은 아닐지라도 대주주인 산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전반적 관점에서 애초 제안보다 진일보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판단에 따라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은과 산은이 이날 오전 대우조선 회사채와 기업어음(CP) 투자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담은 '회사채 및 CP 상환을 위한 이행 확약서'를 전달한 것도 국민연금의 최종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채무재조정과 관계없이 분식회계로 입은 회사채 투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 관련 소송을 확대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분식회계로 망가진 대기업을 살리는 데 국민의 노후자금을 동원했다는 비판과 업무상 배임 혐의를 뒤집어쓸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면 출자전환을 하는 회사채 50%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형사소송법상 업무상 배임이 될 여지가 있다.
국민연금은 2012∼2015년 발행된 대우조선 회사채를 보유 중이고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는 2008년부터 2016년 3월까지 이뤄졌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대우조선 회사채 발행 시기는 분식회계를 조직적으로 묵인·방조·지시했다는 이유로 최근 1년간 신규감사 업무정지 제재를 받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대우조선의 외부회계감사를 맡은 시기(2010∼2015년)와도 겹친다.
따라서 분식회계에 따른 잘못된 재무제표를 토대로 발행된 회사채에 투자해 발생한 손해를 대우조선이나 딜로이트안진 등으로부터 배상받아야 한다는 게 국민연금의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대우조선 채무조정안 수용은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과"라면서 "법적 소송은 이와 별개로 병행해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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