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대선 D-7] ③기성정치 불신 속 부동층·청년유권자 표심 최대변수
극우집권 막아온 공화국전선 작동해도 효력은 전보다 약할 듯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이번 프랑스 대선의 결과를 가를 최대변수로는 여전히 높은 무당파 또는 부동표(浮動票) 비율,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청년유권자들의 표심, 역사적으로 극우의 집권을 막아온 '공화국 전선'의 작동 여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후보별 단순 지지율 뒤에 숨어있는 이들 변수의 추이에 따라 프랑스와 유럽을 넘어 현대 세계사를 새로 쓰게 될 이번 프랑스 대선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높은 부동표 비율…선두권 후보 넷에게 모두 '기회의 창'
여전히 높은 부동표 비율은 이번 대선의 향배를 가를 최대변수로 주목된다.
기성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환멸로 정치적 무관심이 커진 가운데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청사진에 시큰둥해 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오는 23일 1차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며 기권 의사를 밝힌 유권자는 현재 32∼34% 수준으로, 지난 2012년 대선의 기권율 20%보다 크게 높다. 이런 상황은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은 네 후보 중 누구에게도 '기회의 창'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여론조사기관 BVA의 최근 조사에서는 1차 투표에 참가하겠다는 유권자 중 34%가 아직 표를 누구에게 줄지 정하지 않거나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는 부동층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막판에 이들 부동표를 어느 후보가 끌어모을지가 승패를 가를 관건으로 보인다.
◇좌절한 청년층 기성 정치엘리트 불신 심각…포퓰리즘에 매료돼
다른 연령대보다 정치적 무관심이 상대적으로 더 큰 프랑스 청년세대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팽배하다.
23%에 이르는 18∼24세 청년 실업률, 그랑제콜로 대표되는 프랑스 특유의 엘리트주의 사다리 구조와 세계화에서 낙오한 청년들의 패배감 등은 역사적으로 이 나라의 정치변혁을 이끌어온 청년들이 정치의 주체 자리를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파리정치대학 정치연구소(Cevipof) 조사에 따르면 35세 이하 프랑스 유권자 가운데 1차 투표에 참가하겠다는 비율은 57%로 절반을 조금 넘긴 수준이다. 전체 연령대 평균인 66%에 비해 10%포인트 가까이 낮다.
연령대를 25세 이하로 좁히면 정치적 무관심 또는 냉소주의는 더 심하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조사에서는 1차투표에서 기권하겠다는 응답률이 이 연령대에서 47%에 달했다.
청년층의 기권 의사가 큰 상황은 반대로 이들의 표를 흡수하는 후보에게는 승산이 있다는 뜻이다.
청년층은 포퓰리즘에 특히 취약하다. 이들은 전후 프랑스 정치를 양분해온 좌·우파 기성 엘리트 정당에 등을 돌리고 포퓰리즘과 보호무역주의, 프랑스 우선주의의에 점차 매료되고 있다.
최근엔 프랑스 청년층의 이런 정치적 냉소가 적극적 의미의 무관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강한 반감의 표시로, 욕구를 건드려주는 정치세력이 있으면 언제든 표를 폭발적으로 결집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나온 프랑스의 세대별 연구보고서 'Generation Quoi'에 따르면 청년층의 87%가 정치를 불신한다고 답했다. 99%는 기성 정치권이 부패했다고 응답해 이들의 정치권에 대한 극심한 불신감을 보여줬다.
이런 상황에서 극우성향 후보 마린 르펜의 청년층에 대한 '무당파 전략'이 파고들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창당한 국민전선에서 극우 이미지를 탈색하고, 기존 정당의 좌우 구분을 초월해 좌파의 경제공약과 우파의 민족주의적 사회공약을 조합한 것이 청년층을 사로잡고 있다.
르펜은 최대 라이벌인 중도신당 에마뉘엘 마크롱을 중산층 엘리트 출신에 투자은행에서 거액의 봉급을 받아온 기득권 세력이라고 공격하며 청년층의 반감을 자극하고 있다.
르펜이 극우 포퓰리스트라는 한 축이라면 급진좌파 진영 후보인 장뤼크 멜랑숑은 극좌 포퓰리스트라는 반대편 축이다.
두 극단 세력은 반(反)유럽연합, 반(反) 세계화, 프랑스 우선주의, 좌절한 노동계층의 대변자 자임 등의 공통분모가 있다. 멜랑숑도 마찬가지로 마크롱을 기득권의 대변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국립사회과학연구소(CNRS)의 제라르 모제 소장은 프랑스 청년유권자들의 특징에 대해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이데올로기적 구분보다는 현 시스템과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는 특성이 크다"며 "이는 (청년 표심이) 르펜과 멜랑숑에 분산된 상황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르펜 진성 지지층 두터워…'공화국 전선' 파괴력 덜할 듯
프랑스에서 극우의 집권을 막아온 전통적인 '공화국 전선'의 작동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공화국 전선이란 극우의 집권을 막고 공화주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 극우를 제외한 제반 정치세력이 연합해 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르펜의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이 2002년 대선에서 집권하지 못한 것도 바로 결선투표에서 공화국 전선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국 전선이 이번에도 강력히 작동할 것이라는 데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지지자 중 선택을 확신한다는 응답률은 67%였지만, 르펜의 지지자들은 81%로 훨씬 높았다.
이 때문에 2002년 대선처럼 좌·우파가 공화국 전선으로 뭉쳐 마린 르펜에 대항하더라도 르펜의 유권자들이 결집하면 그 파괴력은 훨씬 덜할 것으로 전망된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세르주 갈람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결선에서 르펜 지지자의 90%가 투표를 하고 마크롱 지지자의 65%가 투표한다고 가정하면 르펜이 50.07%의 득표율로 승리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yongl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