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女피고인들 무죄 주장…다음 재판은 5월(종합)
말레이 북한인 용의자 출국에 불만 토로…"우린 희생양"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김정남 암살 혐의로 기소된 동남아 출신 여성 피고인들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이 내달 30일로 연기됐다고 선데일리 등 현지 언론이 13일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세팡 법원의 하리스 샴 모하메드 야신 판사는 정부 각 부처에 요청한 관련 서류가 도착할 때까지 재판을 연기해 달라는 검찰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애초 세팡 법원은 이날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9)의 사건을 병합해 샤알람 고등법원으로 이첩할 예정이었다.
시티 아이샤와 도안 티 흐엉은 지난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로 분류되는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TV쇼 촬영을 위한 몰래카메라라는 북한인 용의자들의 거짓말에 속았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말레이시아 검찰은 이들이 살해 의도를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입장이다.
말레이시아법은 의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에선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내 억류 자국민을 귀환시키려고 북한 정권과 타협을 하는 바람에 '깃털'에 불과한 여성 피고인들만 희생양이 됐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달 30일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에 넘기면서 시티 아이샤를 포섭한 인물로 알려진 북한 국적자 리지우(일명 제임스·30)의 출국을 허용했다.
시티 아이샤의 변호인은 "진상을 밝힐 수 있는 인물인 리지우를 출국시킨 것은 (피고인의) 변론 기회를 빼앗은 것으로 오심(誤審)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티 아이샤는 올해 초 인도네시아 바탐섬에서 만난 리지우로부터 몰래카메라 출연을 권유받은 것을 계기로 김정남 암살에 관여됐다.
변호인은 리지우가 시티 아이샤에게 오일과 후춧가루를 주고 수일에 걸쳐 자신이 지목하는 인물의 얼굴에 이마부터 아래쪽으로 바르라고 가르쳤으며, 이 장면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촬영했다고 전했다.
이후 시티 아이샤는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의 백화점, 호텔, 공항 등지에서 여러 차례 예행연습을 했고, 북한인 용의자들은 그에게 한 차례 100∼200달러씩을 지급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지난달 말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을 방문 조사한 뒤 리지우를 비롯한 북한인 용의자 3명을 출국시켰으며, 그들의 진술 내용과 김정남 암살 장면이 담긴 공항 CCTV 영상을 제공하라는 요구에도 응하지 않아 공정한 재판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시티 아이샤의 변호인은 비판했다.
도안 티 흐엉 측 역시 이날 법원에서 말레이시아 정부가 리지우와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44),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7) 등 북한인 용의자 3명을 출국시킨 조치에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도안 티 흐엉의 사촌동생 쩐 휘 황(23)은 "우리 가족과 베트남 국민은 그의 무고함을 믿는다"면서 "도안은 (북한인들에게) 속았을 뿐이다.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김정남 암살 이후 북한과 갈등을 빚었으나 북한이 자국내 말레이시아인을 억류해 '인질'로 삼자 지난달 30일 김정남의 시신을 북측에 인도하고 암살에 연루된 북한인 용의자들을 전원 출국시킨 뒤 양국 관계 정상화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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