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서거 47주기 기념식 서울대서 열려

입력 2017-04-12 11:21
수정 2017-04-12 11:43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서거 47주기 기념식 서울대서 열려

정운찬 전 총리 등 100여명 참석…스코필드장학금 전달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독립 후에는 서울대 수의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한 '또 한 명의 민족대표'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 서거 47주기를 기리는 기념식이 12일 열렸다.

서울대 주최로 수의과학대 스코필드홀에서 진행된 기념식에는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과 성낙인 서울대 총장, 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정 명예회장은 "스코필드 박사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녔다"면서 "박사는 '정직하라', '선한 어려운 사람에게 비둘기의 자애로움으로, 정의롭지 못한 강한 사람에게는 호랑이의 날카로움으로 대하라'라고 가르쳤다"고 전했다.

기념식에서도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생과 관악구 신림중학교 학생에게 스코필드장학금이 전달됐다.

기념식에 이어서는 김희준 광주과학기술원(GIST) 석좌교수가 '내가 만난 두 사람의 과학자: 리비트와 스코필드'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1889년 영국 워릭셔주에서 태어난 스코필드 박사는 1907년 캐나다에 이민 가 1911년 토론토대에서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16년이다. 그때부터 4년간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과 위생학을 가르쳤다. 석호필이라는 한국 이름도 당시 지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3·1 운동을 지원·기록하고 일제의 비인도적 만행을 규탄하는 활동을 벌였다. 박사는 일제가 학살을 자행한 경기 화성시 제암리 학살현장을 답사하고 기록하기도 했다.

또 박사는 일본인이 주간인 영자신문에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는 기고문도 실었고 도쿄에서 열린 선교사회의에서는 3·1 운동을 알렸다.

이듬해 일제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한국을 떠난 박사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한국 상황을 알리는 운동을 전개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58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후 박사는 서울대 수의과학대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1959년 대한민국으로 영구귀국했다. 박사에게는 1960년 대한민국 문화훈장과 1968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국민장 등이 수여됐다.

스코필드 박사는 1970년 4월 12일 서거했다.

유언에 따라 박사는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이날 기념식 참석자들은 기념식에 앞서 스코필드 박사 묘를 참배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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