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난민촌서 난투극 끝에 방화추정 화재…오갈데없는 '난민신세'
쿠르드계 난민과 새로 유입된 아프간 난민 간 갈등이 원인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의 북부의 한 난민촌에서 흉기 난투극에 이어 발생한 화재로 난민들의 보금자리인 임시 건물 300여 채가 소실됐다.
출신 지역별로 나뉘어 서로 반목해온 난민들은 집단 갈등 끝에 발생한 화마(火魔)에 임시거처를 잃고 또다시 갈 곳 없는 난민 신세가 됐다.
11일 RFI 등 프랑스언론들에 따르면 프랑스 북부의 해안도시 덩케르크 인근의 그랑드생트 난민촌에서 10일 밤(현지시간) 대형 화재가 발생해 난민촌 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했다.
그랑드생트 난민촌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건너온 1천∼1천500여 명의 난민이 임시로 거주해왔다.
화재로 10여 명의 난민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화마에 거처를 잃은 난민들은 인근 체육관 등지에 마련된 임시숙소에 분산 수용됐다.
이날 화재는 누군가가 홧김에 불을 질러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10일 저녁 그랑드생트 난민촌에서 아프가니스탄계 난민과 이라크 쿠르드족 난민 간에 언쟁이 벌어졌고 언쟁은 곧 집단 난투극으로 변했다. 난투극 와중에 누군가가 흉기를 꺼내 휘둘러 6명이 다쳤다.
이후 난민촌의 곳곳에서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했고, 목제 가건물이 촘촘히 들어선 난민캠프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300여 동의 임시 건물이 소실됐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 난민촌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는 신고에 따라 경찰이 출동했으나 난민들은 경찰에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그랑드생트 난민촌은 지난해 이 지역 인근 칼레의 난민촌 '정글'이 폐쇄된 이후 의료봉사단체 '국경 없는 의사회'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그랑드생트 난민촌 설립에 반대했었다.
정글에 기거하던 난민들은 전국의 난민촌으로 분산 수용됐고, 그랑드생트 난민촌에도 정글의 난민들이 대거 이주해왔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정글에서 아프가니스탄계 난민들이 그랑드생트 난민캠프로 유입되면서 기존의 쿠르드족 난민들과 갈등이 빚어졌고, 결국 두 세력 간의 갈등이 이날 화재의 씨앗이 됐다.
쿠르드족 난민들이 목재건물에서 기거하는 것과 달리 새로 온 아프간 난민들은 공동주방 등에서 불편하게 생활해야 했던 것이 갈등을 촉발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이 캠프에서 한 난민이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있었고, 지난달에도 난민들 간의 난투극으로 5명이 다치는 등 갈등은 계속 증폭돼왔다.
난민 간 폭력사태가 빈발하자 현지 경찰은 그랑드생트 난민촌의 해산을 검토해왔다.
프랑스 북부 해안 지역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동유럽 등지에서 넘어온 난민들이 영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모여들고 있어 이들을 집단으로 거주하는 난민촌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대표적인 난민촌이 칼레의 '정글'로, 지난해 10월 프랑스 정부에 의해 철거되기 전까지 6천500여 명의 난민이 이 곳에 거주했다.
칼레 난민촌은 화장실과 상·하수도 등 필수 생활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열악한 형편에 '정글'로 불렸다.
프랑스 정부는 열악한 환경을 방치할 수 없다면서 인도주의적 목적에서 칼레 난민촌을 철거 방침을 정하고 지난해 10월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난민촌을 철거했다.
거처를 잃은 난민들은 전국의 시설에 분산 수용됐고, 그 일부가 그랑드생트 난민촌으로 옮겨갔다가 화재로 또다시 거처를 잃는 불운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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