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3만3천편이 손 안에…모바일앱 '시요일' 오픈
큐레이션에 시인·시어·태그 검색 기능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시요일'을 켜자마자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가 4월 11일 '오늘의 시'로 떴다. '테마별 추천시'에서 '인생을 돌아보고 싶을 때'를 선택하니 신경림의 '그날', 박영근 '나에게 묻는다', 이제니 '밤의 공벌레' 등 7편이 추천됐다.
최근 운영을 시작한 시 전문 앱 '시요일'에는 창비가 그동안 출간한 시집에 실린 작품 3만3천여 편이 담겼다. 고은·신경림·천양희 등 원로와 김사인·도종환·정호승·안도현·문태준 등 중견 시인, 안희연·신미나·박연준 등 젊은 시인들까지 그동안 '창비시선'으로 선보인 시인 220여 명의 작품이 실렸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 등 단행본 시집과 동시·청소년시, 김소월·윤동주·한용운·정지용 등 1920년대 이후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이 망라됐다.
앱은 다양한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매일 날씨·계절·절기에 따라 엄선한 '오늘의 시', 감정·장소·상황에 맞는 작품을 보여주는 '테마별 추천시' 등이다. 시를 어렵게 느끼는 독자를 위해 박성우 시인이 작품을 골라 해설해주는 메뉴도 있다.
3만3천여 편의 시 중에서 시어와 시인 이름, 시집 표제별로 검색할 수 있고 주제·감정·시간·소재 등을 조합해 추출하는 태그 검색 기능도 탑재했다. '#분노'와 '#봄' 두 가지 태그를 집어넣고 검색하니 김남주의 '개털들', 도종환의 '낙동강' 등 27편이 나왔다.
모바일 서재에 시를 스크랩해두거나 SNS를 통해 지인에게 시를 선물할 수 있다. 시인이 직접 낭송한 음원도 일부 제공한다.
창비는 큐레이션과 검색기능을 위해 2년간 작품들의 주제어와 핵심 시어, 유사어 등을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박준·안미옥 등 10여 명의 시인이 작업하고 김사인·신용목·손택수 시인이 감수했다. 공간·시간 등 객관적 요소를 분석하는 데는 국어교사 60여 명이 참여했다.
시집을 전자책과 비슷하게 스마트폰에 옮긴 경우는 있었지만 큐레이션과 태그 검색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앱은 처음이다. 염종선 창비 이사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단순히 시를 한곳에 모아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떻게 잘 분류하고 정리해서 독자들이 쉽고 대중적으로 시를 만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창비의 이런 시도는 모바일 매체에 적합한 시의 장르적 특성을 활용, 문학과 종이책 모두 위기에 처했다는 비관론을 뒤집어보기 위한 것이다. 김사인 시인은 "종이 위에 행갈이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시라는 양식이 새로운 차원으로 변모하고 진화할 수 있을지가 이 앱에 대한 반응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며 "나이가 많을수록 시를 전자매체로 접하는 상황에 거부감을 갖지만 둘의 결합은 피할 수 없는 도전이자 기회"라고 했다.
창비는 종이책 시집이 나오는대로 작품을 업데이트하고 번역시와 시조 등 고전도 실을 계획이다. 앱은 이달 말까지 무료, 다음 달부터는 월 3천900원을 내면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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