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구급의학회 "본인 희망시 응급처치 하지 말자" 제안

입력 2017-04-10 10:59
일 구급의학회 "본인 희망시 응급처치 하지 말자" 제안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환자가 심장이나 폐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빠졌더라도 본인이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미리 주위에 밝혀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면 응급실에서 구명조치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제안이 일본 의료계에서 나왔다.

NHK에 따르면 일본임상구급의학회는 7일 말기암이나 고령 등으로 치료 가능성이 없는 종말기 환자가 심폐정지상태에 빠졌을 경우의 구급조치 등에 관한 제언을 발표했다.

종말기 환자는 치료 가능성이 없어 수주일∼6개월 내에 죽음이 예상되는 환자를 말한다. 회복을 기대할 수 없어 본인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으나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경우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병원으로 이송돼 구명이나 연명 등의 조치를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본구급의학회는 제언에서 구급대원이 긴급출동한 경우 원칙적으로 심폐소생 등의 구명조치를 하되 주치의 등과 연락해 환자 본인이 구명조치를 원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병원이송이나 구명조치를 그만둘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또 이런 경우에 대비해 구명조치 등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출동한 구급대원이 확인할 수 있도록 미리 주치의 외에 본인 또는 가족이 서명한 서류를 작성해 두자고 제안했다.

사카모토 데쓰야 일본임상구급의학회 대표이사는 "제언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며 향후 논의의 계기로 삼기 위해 마련했다"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지를 각자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주무 부처인 후생노동성도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는 종말기 환자의 병원 응급이송 원칙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후생노동성은 10~15개의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재택의료에 관계하는 주치의와 지자체, 의사회, 구급대원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설치, 종말기 환자를 병원으로 응급 이송할 때 환자 본인의 의사를 어떤 식으로 확인할지와 정보공유 방법 등에 관한 원칙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환자가 종말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지를 결정할 때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공호흡기나 튜브를 통한 영양 공급 등의 의료행위가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는 자료를 작성해 지자체를 통해 배포할 계획이다.

이런 제도를 이미 도입한 지자체도 있다. 도쿄(東京) 하치오지(八王子)시는 6년 전에 이미 소방서와 자치단체, 병원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하치오지시 고령자구급의료체제광역연락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연락회는 환자의 병력과 복용하는 약, 담당 의사 등의 정보를 사전에 공유할 수 있도록 "구급의료정보"라는 점검표를 독자적으로 마련했다. 점검표에는 병원에 긴급이송됐을 경우 의료기관에 바라는 내용을 "가능한 한 구명이나 연명조치를 해달라", "고통을 완화하는 조치를 해달라", "최대한 자연스러운 상태로 지켜봐 달라" 등의 항목에 자신의 뜻을 표시하도록 했다.

하치오지시에서 혼자 사는 안도 세이지(90)씨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지켜봐 달라"는 항목을 선택하고 출동한 구급대원이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냉장고에 붙여 놓고 있다. 안도씨는 "충분히 오래 살았다. 자식이나 이웃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연명치료는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락회는 지금까지 65세 이상의 고령자 31만 명에게 점검표를 배포했다. 실제로 자택에서 쓰러진 75세의 남성을 병원으로 응급이송할 때 가족이 구급대원에게 점검표를 건네 이송한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중증환자 치료문제를 주로 다루는 일본집중치료의학회는 "심폐소생술 시행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표시가 의료현장에서 오용되거나 부적절하게 확대해석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구할 수 있는 생명을 구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히 대처해야 하며 국민 전체가 이런 의사표시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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