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범람] 점심값보다 비싼 커피…왜 이렇게 많이 마실까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점심값보다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왜 마시느냐고요?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스타벅스 매장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에 지친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일종의 '힐링 타임'이랍니다."
8일 오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만난 회사원 강혜림(33·가명) 씨는 자신이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강 씨는 "매장 분위기가 다른 커피전문점보다 훨씬 쾌적하고 그윽한 커피 향이 감도는 스타벅스에 오면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며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면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강 씨는 스타벅스가 매년 연말에 출시하는 다이어리도 빼놓지 않고 사모으는 '스타벅스 마니아'다.
지난해 연말에도 색상별로 4가지 다이어리를 모두 구매했다.
정확히 말해 이들 다이어리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스타벅스 커피 17잔을 마시면 한 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강 씨는 4가지 색상을 모두 모으기 위해 커피 68잔을 마신 것이다.
강 씨는 "어차피 마실 커피였기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이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다이어리를 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수집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씨는 '커피 마니아'라기보다는 다른 많은 20~30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스타벅스 마니아'인 셈이지만 이날 홍대입구 근처의 '테일러 커피'(Tailor Coffee)에서 만난 최유미(31·가명) 씨는 생각이 달랐다.
테일러 커피는 최근 이 일대에서 유행하는 이른바 '로스터리 카페'(roastery cafe)의 일종이다.
로스터리 카페는 커피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커피 매장 내에서 직접 로스팅(roasting)한 신선한 커피 원두로 커피를 만들어 파는 커피숍을 말하는데, 대체로 스타벅스같은 대형 커피 체인점보다 가격이 비싸다.
다만 테일러 커피는 매장 내에서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지는 않고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로스팅 공장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가져다 쓴다.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한 최 씨는 "그동안 국내 커피전문점에서 만든 커피는 그다지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잘 마시지 않았는데, 우연히 테일러 커피를 접하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커피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탈리아 유학 시절 즐겼던 커피맛에 뒤지지 않는 커피를 국내에서도 맛볼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서촌의 로스터리 카페 '퀸시바'에서 만난 강지나(42·가명) 씨도 최 씨와 생각이 비슷했다.
강 씨는 "퀸시바 커피를 알게 된 뒤로는 대형 커피전문점 커피는 마시지 않게 됐다"며 "스타벅스에 가는 것은 커피맛을 보고 간다기보다는 스타벅스가 상징하는 일종의 '문화 코드'를 소비하러 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동안 국내 원두커피 시장 성장세는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테일러 커피나 퀸시바와 같은 다양한 커피 전문점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고급화·다양화하는 추세다.
업계 전문가들은 유럽이나 호주 등 해외 커피 선진국들의 사례를 볼 때 국내 커피 시장도 성숙기에 접어들수록 획일화된 맛과 품질의 대형 커피전문점보다는 개성있는 맛과 서비스를 내세운 소규모 커피전문점들이 점점 인기를 끌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아직 우리나라 커피시장은 성숙 단계인 유럽이나 호주, 일본 등과 비교하면 성장 잠재력이 큰 미성숙 시장"이라며 "갈수록 소비자들의 취향이 고급화하고 있기 때문에 커피 시장의 구도도 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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