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의 독특한 공존…빛난 소프라노 임세경
국립오페라단 '팔리아치 & 외투' 리뷰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나이 든 남편과 젊은 아내, 그 아내와 젊은 남자의 사랑, 치정살인. 이런 동일한 소재를 다룬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푸치니의 '외투'는 효과가 뛰어난 조합이었다.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김학민)이 올해 첫 공연으로 지난 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 이 두 오페라는 '베리스모(19세기 말~20세기 초 이탈리아 하층민의 현실을 보여준 자연주의에 가까운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이라는 점 외에는 상호연관성이 없는 작품들이지만, 연출가 페데리코 그라치니는 두 작품의 내용적 연결을 시도했다.
원래 '팔리아치'는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방, '외투'는 파리 센 강이 지역적 배경이지만, 이번 연출에서 지리상의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 어디여도 좋을 이 극의 배경은 '화려한 도심의 뮤지컬극장'(팔리아치)과 '허름한 시 외곽 강가의 하역창고 및 보트하우스'(외투)로 나뉘고, 등장인물들은 양쪽 무대를 오간다.
효율적인 공간분할이 감탄을 자아낸 '팔리아치'의 무대는 관객이 줄을 선 뮤지컬극장의 찬란한 외관으로 프롤로그를 연다. 1막 무대의 왼편은 극장 분장실, 중간은 분장실 복도 및 다른 분장실의 문이다. 오른쪽으로는 극장 무대로 통하는 출입구 '스테이지 도어'가 있다. 인물들의 동선을 치밀하게 계산한 무대 구조다. 2막에서는 무대 안쪽에 극장 객석을 배치하고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과 가수들이 함께 펼치는 뮤지컬(극중극) 공연이 이루어지게 했다.
'외투'의 무대는 이런 도심의 화려함과 대조를 이루는 빈곤하고 희망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연출가는 '팔리아치'에서 뮤지컬에 출연했던 가수와 무용수들을 이 하역창고에 다시 등장시켜, 암울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여주인공 조르젯타 내면의 환상으로 이들을 보여준다.
'팔리아치'와 '외투'의 여주인공 넷다·조르젯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임세경은 이날의 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최고의 주역이었다. 흔들림 없는 견고한 발성과 무르익은 표현력, 맑고 힘이 넘치는 고음도 탁월했지만 변화무쌍한 감정을 드러내는 선명하고 강렬한 중저음은 때로 마리아 칼라스의 음색을 떠올리게 할 만큼 고혹적이었다.
두 작품의 남자주인공 카니오·루이지 역을 맡은 미국 테너 칼 태너 역시 정교한 발성과 압도적인 표현력으로 관객을 만족시켰다. 특히 카니오 역에 최적화된 그는 절망과 분노를 절절하게 표현한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로 열광적인 갈채를 끌어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상임지휘자 주세페 핀치가 이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팔리아치'의 밝고 명랑한 음악과 '외투'의 어둡고 무거운 음악을 효과적으로 대비시켰고, 부드럽게 또는 격렬하게 흐르는 강물을 묘사한 '외투'의 도입부를 인상적으로 연주했다. 그란데오페라합창단과 CBS소년소녀합창단은 특히 '팔리아치'에서 복잡하고 속도감 있는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 극을 더욱 활기 있게 만들었다. 출연진은 두 팀이며 공연은 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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