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전두환, 동남아에 '태평양정상회담' 제안했다 외면당해

입력 2017-04-11 06:00
수정 2017-04-11 06:07
[외교문서] 전두환, 동남아에 '태평양정상회담' 제안했다 외면당해

대화 개설 요구했지만 아세안 '어렵다'…정부 "실익 의문 가진 듯"

프랑스 통해 남북 유엔 동시 가입 반대하던 소련 설득 시도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김승욱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시절(5공화국) 정부가 동남아시아에 '구애'했지만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들이 사실상 외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가 11일 공개한 1986년 5월 15일자 '대아세안 외교 강화를 위한 접근 방향' 제목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5공화국 시절 아세안에 대화 개설을 요구했다.

남북 사이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던 아세안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외교전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아세안 회원국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아세안은 우리 정부에 '현재 대화 개설을 요청하는 나라가 많은데 이를 무시하고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외교문서에 "이는 표면상의 이유일 뿐, 실제로 그들은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 비춰 한·아세안 대화가 우리나라에 의해 정치적으로 크게 이용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적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당시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있었다.

외교문서는 "아세안은 현재 선진국과의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이룩하면서 국익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현시점에서 선진국이 아닌 우리나라와 대화를 통해 과연 그들이 목표하는 실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 대통령이 한국과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 등이 참여하는 '태평양 정상회담'을 제의했지만, 아세안이 역시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당시 아세안은 각종 사안에 대한 회원국 간 이견으로 적지 않은 잡음이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아세안은 '태평양 정상회담'으로 인해 아세안 조직이 와해하고 미국 등 선진국의 영향력에 아세안이 흡수될까 우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태평양 정상회담'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 의견을 듣고자 리콴유 싱가포르 당시 총리를 접촉했다.

리 총리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설득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했지만, 결국 전 전 대통령의 '태평양 정상회담' 제안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한편, 전 전 대통령은 프랑스를 통해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에 반대하던 소련을 설득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986년 4월 유럽 순방에 나선 전 전 대통령은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테랑 대통령에게 "모스크바를 방문하시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소련 지도자들에게 강력히 말씀드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 한반도에서도 긴장이 완화되지 않겠느냐"면서 "각하께서 모스크바에 가시면 그들을 잘 이해시켜 주시기 바라며, 그렇게 되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아주 훌륭한 일을 하시게 되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88올림픽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북미·한중 교차 수교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지만, 소련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분단을 고착화한다며 반대했다.

전 대통령은 "세계의 많은 지도자 가운데 세계 평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분 뿐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런 부탁을 드린다"며 미테랑 대통령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자 미테랑은 6월에 모스크바를 방문한다며 "고르바초프를 만나면 반드시 각하 말씀을 전해드리고 결과를 직접 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전 대통령은 귀국 뒤 방한한 프랑스 외교 장관에게 미테랑 대통령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등 큰 기대를 걸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86년 7월 7∼10일에 걸친 방소 기간 수차례에 걸쳐 7시간이나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단독회담을 했지만 한반도 문제는 의제에 전혀 오르지 않았다.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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