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산림과장 사이토 오토사쿠 망우리서 추모제…일부 논란도

입력 2017-04-05 18:06
일제산림과장 사이토 오토사쿠 망우리서 추모제…일부 논란도

"재조명받아야" vs "식민지 임업 정책 지휘한 사람"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양지웅 기자 = 일제 총독부의 초대 산림과장과 영림창장(산림청장)을 지낸 사이토 오토사쿠(齋藤音作·1866∼1936) 추모 행사가 식목일을 맞아 5일 중랑구 망우리공원의 사이토 묘 앞에서 열려 논란이 예상된다.

그간 식목일을 즈음해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를 추모하던 것에 더해 올해 처음으로 사이토 추모식도 함께 열렸다. 두 사람의 묘는 모두 망우리공원에 있다.

다쿠미는 조선총독부 임업연구소에 근무하며 조선 산림녹화에 힘썼던 사람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의 진정한 친구'였다는 평가가 있다.



행사를 주관한 아사카와 노리타카·다쿠미형제 현창회 관계자는 사이토에 대해 "한국에 아카시아와 포플러나무를 심었고 퇴임 후에도 평생을 바쳐 헐벗은 조선 산하의 녹화에 이바지했다"며 "그의 공과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으나 최근 긍정적 평가를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추모제 추진에 앞장선 이수현의인문화재단의 노치환 사무총장도 "사이토는 아직 공과 과가 정확하게 평가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재조명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평했다.

일본강점기 임업과 산림정책을 연구해 온 공주교대 최병택 교수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사이토는 식민지 임업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사람"이라며 "조선총독부가 내걸었던 식민지문명화론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사이토는 한국의 모든 관습과 제도를 야만시하고 일본의 시스템을 문명으로 포장하는 데 앞장섰다"며 "그런 사람을 추모하는 것은 식민지 담론을 제대로 비판하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지적했다.

'임업 근대화와 녹화에 기여한 사람'이라는 주장과 '산림 수탈의 지휘자'라는 평가가 엇갈린 셈이다.

사이토의 묘는 한국식 묘와 달리 봉분이 없었다. 일본식으로 묘비 아래에 화장한 유골을 묻은 것이라고 한다.

묘비 뒤에는 사이토가 사망한 1936년을 뜻하는 '쇼와(昭和) 11년'이 적혀 있었다.

노치환 사무총장은 묘비의 파손 흔적을 가리키며 "한국전쟁 당시 총탄의 흔적으로 보이는 자국들"이라고 설명했다.

노 사무총장 등은 돌아가며 묘비 주변에 막걸리를 부은 후 묵념하는 것으로 참배를 마쳤다.

망우리공원에 있는 설명 게시판에 따르면 사이토는 1915년 영림창장을 거쳐 1918년 퇴직했으나 한국에 남아 사이토임업사무소를 세워 산림 위탁경영 사업을 했다.

그는 차관·국장급을 일컫는 칙임관 이상의 관료로 한국에 묻힌 유일한 일본인이기도 하다. 아사카와는 동향 출신 선배 사이토의 영향으로 임업계에 투신했고 한국에서도 인연을 이어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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