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조정안 통과돼야" 대우조선 간부들 채권자 찾아 '3만리'

입력 2017-04-06 07:00
수정 2017-04-06 12:50
"채무조정안 통과돼야" 대우조선 간부들 채권자 찾아 '3만리'

거제 떠나 전국서 채권자집회 참여 '읍소'…"회사 살리는데 하루 해가 짧다"

(거제=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서 23년 째 근무 중인 40대 후반의 사무기술직 김모 부장은 요즘 거제를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1994년 입사 이래 지금같은 '독특한' 근무는 처음이다.

지난달 27일 집을 떠나 '보따리'에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넣고 서울 중구 을지로 대우조선 서울사무소 근처 중국인 전용 모텔에서 생활한 지 6일로 2주째가 된다.

채권자들을 만나야 하기에 늘 입고 다니던 작업복 대신 넥타이를 맨 채 말쑥한 차림으로 다닌다.

속옷 빨래는 모텔 근처 자동세탁기에서 해결한다.



그는 매일 오전 8시 서울사무소로 출근해 그날 만나야 할 채권자들 명단을 확보한 뒤 동료 1명과 함께 '2인 1조'로 채권자들을 만나러 정처 없이 서울 곳곳을 돌아다닌다.

운이 좋으면 하루 3∼4명의 채권자들을 만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 공을 치거나 1∼2명 만나는 데 그친다.

그가 하는 일은 대우조선 회사채를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 채권자들을 상대로 오는 17일과 18일 열리는 '채권자집회'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채권자집회에는 금액 기준으로 3분의 1이상 채권자가 참석해야 하며 참석자 가운데 3분의 2이상이 동의해야 채무조정안이 통과된다.

대우조선이 판매한 회사채 규모는 모두 1조3천500억원에 달한다.

그는 채권자들을 만나 "조선 3사 가운데 대우조선 수주 잔량이 가장 많다"며 "지금의 위기는 기술이나 경쟁력 문제가 아닌 단기 유동성 문제이니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다닌다.

어떤 채권자들은 "대우조선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힘을 준다. 반면 어떤 채권자들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는다.

그럴 때마다 힘이 쫙 빠지지만 회사, 더 나아가 가족을 생각해서 꾹 참고 다시 전화나 문자로 설득작업에 나선다.

투자금액이 수억원대에 이르는 전문 개인투자자의 경우 전문가 뺨치는 관련 지식으로 무장하고 이번 채무조정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어 설득에 애를 먹기도 한다.



이런 일이 얼마나 주효할지 확실치는 않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수시로 한다.

김 부장은 오는 15일까지 3주간 서울에 머물면서 채권자들 접촉과 설득을 계속한다.

그와 같은 '임무'를 띤 대우조선 간부 사원은 모두 120여명에 이른다.

그들 모두 김 부장과 마찬가지로 거제에서 보따리를 싸 서울로, 전국으로 흩어졌다.

연고가 있는 곳에서 채권자들을 만나 설득작업에 나섰다.

이들은 부·차장급 사무기술직(인사, 총무, 조달, 설계, 생산관리) 직원들이다. 채권자들을 찾아다니는 일은 김 부장처럼 입사 이래 모두 처음이다.

다들 생소한 분야 업무를 하려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간다.

저녁 때 한 자리에 모여 채권자들을 만났던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 위로·격려하며 스트레스를 날리기도 한다.

일부 개인투자자의 경우 이번 조정안에 불만을 갖고 욕을 하며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강남의 큰손'을 만나 "수고한다"는 격려와 함께 소주 한 잔을 얻어먹는 경우도 있었다. "대우조선의 미래가치를 믿는다"며 힘을 줄 때는 피곤한 것도 순간적으로 잊었다.

대우조선 직원들은 이달 유동성 위기를 제대로 헤쳐나가지 못할 경우 회사가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가 초긴장 상태다.

한 부장급 직원은 "회사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데 대해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면서 "모두가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고 서로 독려하고 있다. 행여라도 게으름을 피는 직원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직원들의 경우 전문적인 응대보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열정과 수주잔량, 기술력의 우수성으로 호소하고 채무조정동의를 읍소하고 있다"며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가정을 떠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채무조정안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동의해 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ky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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