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초등 교과서 검정결과에 일본 빵집들이 분노하는 이유
향토사랑·애국심 강조하며 '빵집'→'화과자집' 일률적 변경 지시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지난달 발표된 일본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검정 결과를 놓고 일본 거리의 빵집들이 들썩거리고 있다. 일본 정부가 검정 과정에서 교과서에 등장하는 '빵집'을 애국심을 고취하겠다며 '일본식 과자(화과자)집'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5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문부과학성은 도쿄(東京)서적이 검정을 신청한 초등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 중 '일요일의 산책 길'에 등장하는 '빵집'을 '화과자집'으로 변경하도록 출판사측에 지시했다.
'일요일의 산책 길'은 할아버지와 산책하던 주인공 아이가 항상 가던 길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 동네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문부성이 문제라며 변경을 지시한 것은 산책 과정에서 등장하는 빵집이다.
검정의 기준이 되는 학습지도요령에는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전통과 문화의 존중,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를 배운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문부성은 이 규정을 들며 '빵집'이 등장하는 것이 부적절하니 '화과자집'으로 바꿀 것을 권했고, 출판사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제빵 업계는 분노하고 있다.
전일본 빵협동조합연합회의 니시카와 다카오(西川隆雄) 회장은 "향토애를 전하는데 빵이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 것에 분노를 느낀다. 마치 양복처럼 빵은 (일본인들에게) 이미 친근해져 있다"고 분개했다.
도쿄 소재 '일본 빵 공업사' 관계자는 "빵집이 일본 문화에 속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것은 의외다. 빵집은 초등생 여자아이가 바라는 장래 직업 순위에서 상위에 속한다"고 말했다.
화과자 업계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전국화과자협회 관계자는 "화과자가 소개돼 좋긴 하지만, 빵과 화과자,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SNS 등 온라인에서도 "빵집은 비국민적인가", "가짜 뉴스인줄 알았다"는 등의 비판적인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일본 정부가 굳이 문제를 일으키면서까지 이 같은 무리수를 던진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출범 이후 과도하게 교육에서 애국을 강조하는 움직임과 연결돼 있다.
아베 내각은 최근 각의(국무회의)에서 "헌법이나 교육기본법 등에 위반하지 않는 형태로 교재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며 교단에서 제국주의의 상징인 교육칙어를 활용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을 사실상 허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베(神戶)여학원대 우츠다 다츠루(內田樹) 명예교수는 "교과서 검정을 하는 사람들의 지성 수준이 얼마만큼 낮은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문부성이 말하는 애국심과 전통의 준중이라는 것은 얄팍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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