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치 인준 전운…'필리버스터 매직넘버 vs 핵옵션 맞불'
민주 '의사진행 방해로 저지" vs 공화 "상원 규칙 바꿔서라도 인준"
2013년 민주당 도입한 '핵옵션', 부메랑으로 돌아와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앞날을 좌우할 닐 고서치 대법관 후보자의 상원 본회의 표결이 7일(현지시간)로 다가왔다.
앞서 3일 상원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고서치 후보자의 청문회 결과에 대해 '긍정적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했다. 마지막 관문인 상원 본회의 표결만 통과하면 고서치 후보는 대법관으로 임명된다는 얘기다.
고서치 후보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 지명권을 행사한 사법부 인사이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의 좌절을 딛고 반격에 나설 수 있도록 해 줄 회심의 '반전 카드'이기도 하다.
현재 대법원은 보수와 진보 성향 대법관의 숫자가 4 대 4로 팽팽하게 맞선 상황이다. 고서치 후보자의 임명으로 대법원의 이념 지형이 보수 쪽으로 기울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상당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연방법원에서 제동이 걸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고, 러시아 대선 개입 의혹 같은 문제도 법의 심판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순간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다면 그로서는 '천군만마'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서치 후보자가 의회 관문을 넘어 대법관에 임명되면 '러시아 스캔들'과 반이민 행정명령 제동, 건강보험 대체법안(트럼프케어) 무산 등으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숨통이 트이면서 반전의 계기를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아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지도부는 총력전에 나섰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상원 100석 중 공화당이 52석을 차지해 정상적인 표결로는 고서치 후보자의 상원 본회의 인준을 저지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의회 소수당이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의사진행을 합법적으로 저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소수당 의원들의 장시간 연설이 주를 이룬다.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은 1957년 미 의회에 상정된 민권법안을 반대하기 위해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이 24시간 8분 동안 연설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본격적인 필리버스터에 돌입한다면 고서치 인준안은 현실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필리버스터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공화당이 나서서 상원 100명 중 60명의 찬성이 필요한 '토론종결 투표'를 해야 한다.
하지만 3일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이 민주당으로서는 '필리버스터 매직넘버'라고 할 수 있는 41번째 지지 의원으로 나서면서 토론종결 투표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쿤스 의원은 "고서치 후보자의 임명에 반대하며, 이 문제에 관한 토론을 끝낼 준비도 돼 있지 않다"며 토론종결 투표에 반대표를 던질 뜻을 분명히 밝혔다.
수세에 몰린 공화당으로서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드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바로 '핵옵션(nuclear option)' 제도다.
핵옵션은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는 토론종결 투표의 가결 정족수를 현행 60표에서 51표로 낮추는 내용의 법안이다.
2013년 민주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출한 고위 공직자 인준안 등이 공화당의 저지로 처리가 지연되는 사태가 잇따르자, 소모적인 정치 논쟁을 막겠다며 핵옵션을 밀어붙였다. 당시 55석으로 상원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은 공화당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통과시켰다.
당시 통과된 핵옵션 제도는 대법관 지명자 인준안만큼은 예외로 했으나, 이번에 공화당은 이를 대법관 지명자까지 확대하는 핵옵션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상원에서 공화당이 52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공화당이 수적 우세를 활용해 밀어붙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민주당이 당초 도입했던 제도가 4년만에 민주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더구나 마지막까지 핵옵션 제도에 반대했던 공화당 중진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3일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여기에 백악관 숀 스파이서 대변인도 핵옵션 도입에 "매우 편안하게 느낀다"며 찬성의 뜻을 밝혀 공화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따라 오는 7일 상원 본회의의 고서치 인준안 표결을 둘러싸고 민주당의 '필리버스터'와 공화당의 '핵옵션'이 맞선 한판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ssa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