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결산] 서민 삶은 휘청대는데…나라살림은 '나홀로 호황'
관리재정수지 적자 40% 줄어…통합수지는 흑자 전환
부동산 시장 호황, 비과세 감면 축소 영향…정부 "재정도 적극적 집행"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김수현 기자 = 지난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례없는 경기 불황에도 나라 살림은 눈에 띄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부동산 시장 등 자산 시장 상황이 나쁘지 않았고 비과세 감면도 확대되면서 세수가 예상보다 더 늘어났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하지만 최악의 청년 실업률, 영세 자영업 경기 불황 등에서 비롯된 서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정부의 '나홀로 호황'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정부 세수 추계가 빗나간 탓에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지원이 제때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 경기는 주춤해도 나라 곳간은 풍족…나라 살림 지표 일제히 개선
4일 '2016 회계연도 국가결산'을 보면 지난해 나라 살림은 경기 침체란 표현이 무색하다.
지난해 총세입은 전년보다 16조9천억원 늘어난 345조원, 총세출은 전년보다 12조8천억원 증가한 332조2천억원으로, 결산상 12조8천억원 잉여금이 발생했다.
쓰려다가 남은 불용액은 2천억원 늘어난 11조원, 올해로 넘어온 이월액은 4조8천억원에 달했다.
결산상 잉여금에서 올해로 넘어온 이월금을 뺀 세계잉여금은 총 8조원 흑자였다.
세계잉여금은 2012∼2014년 연속 적자였다가 2015년(2조8천억원)에 이어 2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세계잉여금 규모로만 보면 2007년 15조3천억원 이후 9년 만에 최대였다.
세계잉여금은 일부를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방교부세(금) 정산, 공적자금 출연, 채무상환 등에 쓸 수 있다. 필요하면 추가경정예산(추경) 재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나라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들도 일제히 개선됐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16조9천억원 흑자로 전년 2천억원 적자에서 '플러스' 전환에 성공했다.
작년 추경 예산을 짤 때 예상과 견주면 통합재정수지 규모는 14조4천억원 늘었고 GDP 대비 비율은 0.9%포인트 개선됐다.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빼 실질적인 나라의 살림살이를 뜻하는 관리재정수지는 22조7천억원 적자였다.
그러나 전년(38조원 적자)보다 적자가 15조3천억원 줄었고 GDP 대비 비율로도 1.0%포인트(-2.4%→-1.4%) 상승했다.
추경 때와 견주면 실제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16조3천억원 적었다. GDP 대비 비율로도 1.0%포인트 개선된 것이다.
◇ 11조원 넘는 불용 재정 제때 쓰였다면…
하지만 지난해 정부 재정의 이런 '선방'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낸 서민들에게는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청탁금지법 시행,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악재가 겹치면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청년 실업률은 2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실업자들과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음식·숙박업은 핏빛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정부는 부랴부랴 지난해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10조원 규모의 재정보강안도 내놨지만 여전히 더 적극적인 재정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소득 5분위 배율이 8년 만에 다시 악화하는 등 빈부 격차까지 심화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재정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 2월 근로장려세제(EITC)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한 내수 민생 대책을 내놨지만 이미 적기를 놓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해 재정은 이미 충분히 확장적으로 집행했으며 올해도 1분기 조기 집행에 집중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는 세수를 추정할 때 보수적으로 한다"라며 "세입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와서 재정수지가 예산보다 개선됐다는 것이지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곳곳에 있는 대내외 불확실성 탓에 더 이상의 확장적인 재정 운영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매년 커지는 복지지출과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 구조적 요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면 재정 집행과 함께 재정 건전성 문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는 것이다.
빠르게 늘어나는 국가 부채 역시 더 이상의 과감한 재정 운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국가채무는 2011년 400조원, 2014년 500조원을 넘은데 이어 다시 2년 만에 600조원대로 치솟았다.
이승철 기재부 재정관리국장은 "지난해 세입 확충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포인트 개선 효과를 달성하는 등 결산 지표가 작년보다 전반적으로 더 나아졌다"라며 "지난해 추경은 99.8% 집행하는 등 재정도 적극적으로 운영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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