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위주 구조조정에 한계…'시장주도' 방식에 힘싣는 이유는

입력 2017-04-04 06:30
채권단 위주 구조조정에 한계…'시장주도' 방식에 힘싣는 이유는

환란 당시 '강력한 카리스마'로 진두지휘 이헌재 방식 더이상 안통해

"대우조선 구조조정에 힘 실어달라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금융당국이 시장주도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시대가 달라져 외환위기 당시 강력한 카리스마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이헌재 전 부총리 방식의 구조조정 시스템이 더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 주도 구조조정은 수년 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된 사안이다. 문제는 정부가 판을 까는 '시장 주도 구조조정'이 얼마나 활성화될 수 있느냐다.

5월 대선 이후 정권 교체를 앞둔 상황에서 시장 주도 구조조정 방안 발표는 "상황이 이토록 어려우니 대우조선해양[042660] 구조조정 방안에 힘을 실어달라"는 금융당국의 메시지로도 읽히고 있다.



◇ 신규자금 지원받아 회사채 갚은 STX조선

정부와 채권단 주도 구조조정이 어려워진 것은 우선 회사채, 기업어음(CP) 등 비협약 채권의 비중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는 기업 대부분이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했기에 '빅딜'이 가능했다. 증권 등 2금융이 발달하지 못해 은행을 압박하면 신속한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금 조달 방식이 다변화되고 채무 구조도 해외 상거래 채권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등 기존 구조조정의 틀이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더라도 회사채 투자자 등 비협약 채권자가 채무 상환을 요구하면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STX조선해양의 경우 2013년 4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채권단 주도의 자율협약을 했지만, 회사채 투자자는 채무 재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회사는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도 원리금 상환 일자가 도래한 회사채 1조2천억원을 모두 갚아야 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 자금 지원의 상당 부문이 회사채 투자자들의 원리금을 갚아주는 데 쓰였다.

법정관리에 갔다가 청산된 한진해운은 은행 등의 협약채권이 29%(1조4천800억원) 정도였고 나머지 71%(3조6천400억원)는 비협약 채권이라 채무 재조정이 어려웠던 사례다.

대우조선해양은 국민연금 등 회사채 투자자가 채무 재조정에 동의해주지 않으면 법정관리의 일종인 P플랜(Pre-packaged Plan)으로 가는 구조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 길어진 경기 침체기…자금 투입 판단 어려워져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해 조정도 복잡해졌다.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은 외부(IMF)로부터 강제된 것이었기에 모든 이해관계자가 고통 분담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은 국책은행·시중은행·금융당국은 물론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국책연구원은 한 전문가는 "울산·거제에 조선업을 집약적으로 육성한 것이 과거 산업 성장기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지역 표심(票心) 등 정치적 득실관계와 엮여 조선업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산업 사이클이 짧아 침체를 보이다가도 이내 호황이 왔지만, 지금은 침체기가 길어진 것도 문제다.

겨울만 넘기면 봄이 와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로 부실기업에 자금을 했는데, 겨울이 길어지면 대책이 없어지는 상황이 된다.

2015년 10월 대우조선에 4조2천억원을 투입했다가 1년 반 만에 또다시 2조9천억원을 투입하게 된 것도 조선업의 장기 불황과 수주 절벽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탓이 컸다.



◇ "대우조선 규모 구조조정은 정부 개입 불가피"

관건은 시장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이 안착할 수 있는지 여부다.

시장 주도 구조조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됐지만 아직도 국내에선 기업 구조조정 물량을 소화할만한 사모펀드(PEF) 등 자본시장의 주체가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나 일반 국민이 이름을 들어 알 정도로 규모가 큰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소화할 능력이 있는 곳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장기적으로 시장 주도 구조조정이 발달한다 해도 대우조선 규모의 기업 처리는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결국 필요하다면 정부가 책임지고 구조조정을 끌고 나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구조조정 문제에 정통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시장을 통해 부실기업 대부분을 처리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뿐"이라며 "이런 미국에서도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대우조선 정도인 부실기업 구조조정이라면 정부가 개입했을 것이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GM·크라이슬러 구제금융이 그 사례"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대우조선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데다 곧 정권 교체가 예정된 상황에서 시장 주도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는 것은 "상황이 이 정도로 어려우니 대우조선 구조조정 방안에 힘을 실어달라는 뜻"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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