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새 대통령에 부치치 총리…'러·EU 줄타기 외교' 주목(종합2보)
출구조사 58% 압승 전망…부치치 "국가진로 정한 날" 승리선언
집권당, 입법·행정부 이어 대통령직 접수…야권 권위주의 경계
(로마·서울=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권혜진 기자 = 러시아의 세력확장으로 정세가 불안정해진 발칸의 주요국 세르비아의 새 대통령으로 알렉산다르 부치치(47) 현 총리가 확실시된다.
2일(현지시간) 대선 1차 투표 직후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Ipsos)가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치치 총리는 58%를 득표해 결선 투표 없이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르비아 선거관리위원회가 3일 56.56%를 개표한 결과에서도 부치치 총리는 득표율 57.03%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인권운동가 출신의 친서방 자유주의자인 사사 얀코비치는 14.84%, 코미디언 정치활동가 루카 막시모비치는 9.04%로 뒤를 따랐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가 끝난 시점으로부터 나흘 뒤에 최종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부치치 총리는 이 같은 결과에 따라 이날 당 본사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대선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나의 승리가 분명하다"며 "오늘은 세르비아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치치 총리는 야권 분열로 모두 11명의 후보가 난립한 이번 선거에서 반사 이익을 얻으며 이변이 없는 한 1차 투표에서 손쉽게 승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일찌감치 예상됐다.
세르비아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얻는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2주 뒤에 상위 2명의 후보가 맞붙는 결선 투표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포퓰리즘 성향의 세르비아 혁신당(SNS) 대표로 2014년 4월부터 총리를 맡고 있는 부치치 총리는 당선이 확정되면 임기 5년의 대통령직으로 자리바꿈을 하게 된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세르비아는 대통령보다 총리의 실권이 크고, 대통령은 상징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부치치 총리는 현 정권을 견제하는 마지막 권력으로 평가되는 대통령직을 자신이 차지함으로써 자신이 소속된 정파의 권력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세르비아 집권당이 의회 과반석을 차지하고 있고 사법부는 정치적으로 휘둘리고 있는 상황에서 집권당이 대통령직까지 손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부치치 총리에 대한 마지막 견제가 사라지면서 세르비아의 민주주의 제도가 한층 더 약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990년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수십 만 명이 사망하는 내전으로 몰고 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정권에서 정보부 장관을 지낸 부치치 총리는 내전이 끝난 뒤 이전의 극단적 국가주의자 성향에서 탈피, 유럽연합(EU) 가입을 밀어붙이는 등 친(親)서방 개혁주의자로 변신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발칸 반도에 부쩍 영향력을 키우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르비아는 부치치 총리가 대통령으로 자리를 옮기더라도 종전 국내외 정책을 고스란히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선 직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전투기, 전투용 전차, 장갑차 지원 약속을 받는 등 러시아의 공식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있기도 하다.
이런 부치치 총리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돼 실권자로 거듭나면 EU 가입 숙원과 친러시아 노선이라는 모순된 정책이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부치치 총리는 이날 당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세르비아 국민 대다수가 유럽의 길을 계속 걷는 한편 러시아, 중국과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치치 총리의 높은 지지율은 코소보 갈등 등 복잡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강력한 리더를 원하는 국민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그러나 야당들은 지금도 권력의 상당 부분을 쥐고 있는 부치치 총리가 5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발판으로 권력을 더 공고히 해 세르비아를 독재 체제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부치치 총리가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유권자들에게 겁을 주고 있다는 주장은 대선 전부터 제기됐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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