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스토리와 세련된 연출의 조화…연극 '파운틴헤드'

입력 2017-04-02 15:56
탄탄한 스토리와 세련된 연출의 조화…연극 '파운틴헤드'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920∼30년대 한창 마천루가 들어서기 시작한 미국 뉴욕. 건축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는 건축가 하워드 로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건축만을 고집하는 인물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사회적 평판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빈민들을 위한 공동주택을 설계하게 된 그는 자신의 설계대로 실제 건축이 이뤄지지 않자 건물을 폭파해버린다. 빈민들은 갈 곳을 잃었고 사회의 비난이 폭주하지만 그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법정에 선 그는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창작이 빈민의 복지나 사회의 안정보다 더 중요하다며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주장한다.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지난달 31일부터 3일간 공연된 연극 '파운틴헤드'는 로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 창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벨기에 출신의 연출가 이보 반 호브는 소련 출신 미국 작가 에인 랜드의 1934년작 소설을 거대한 스케일로 무대 위로 옮겼다.



원작은 이상주의자이자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인 로크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이타주의나 희생, 평등 같은 일반적으로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가치를 비판하고 개인을 사회보다 우위에 둔다.

그러나 반 호브 연출은 원작과 달리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지 않았다. 연극은 로크를 비판하며 이타주의와 사회 공동체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시각을 대등하게 제시하면서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뒀다.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스토리와는 별개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무대 연출이다.

오케스트라 피트까지 활용한 넓은 무대에서 오른쪽엔 로크의 사무실이, 왼쪽엔 또다른 주인공 피터 키팅의 사무실, 중앙엔 키팅의 집 같은 식으로 무대 위에서는 여러 공간의 장면이 동시에 펼쳐진다.

라이브 카메라를 즐겨 쓰는 반 호브 연출은 이번에도 카메라와 스크린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건축사 사무소를 옮겨놓은 듯한 무대에서 배우들은 진짜 건축가처럼 직접 건축 도면을 그린다. 관객들은 무대 한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배우들이 그리는 도면을 라이브로 볼 수 있다.

카메라와 스크린은 이처럼 관객이 바로 볼 수 없는 장면을 조감도 시점에서 보여주면서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또 특정 장면이나 인물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스크린은 연극에 영화적 요소를 더한다.

다만 일부 장면들은 보기에 불편하다. 일부 여성관객들은 여자 주인공이 로크에게 강간당한 뒤 사랑에 빠지는 장면 등을 굳이 집어넣었어야 하는지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어로 진행돼 자막을 봐야 하고 인터미션(중간 휴식시간) 20분을 포함해 4시간에 이르는 긴 공연이다. 그러나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와 세련된 연출이 조화를 이루고 볼거리가 많아 시간은 훌쩍 흘러간다. 한국 공연은 3일간 매진됐고 관객들은 커튼콜 때 기립박수를 보냈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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