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결렬도 대비" vs 英 "배드딜보다 노딜"…협상 '배수진'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영국과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에 임하면서 파국을 뜻하는 '협상 결렬'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꺼내면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협상 결렬에 따른 악영향이 비대칭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결론은 양측 모두에 예측 불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렉시트(그리스의 EU 이탈) 위기 국면에서 '질서없는' 이탈 가능성만으로도 그리스는 물론 남유럽 국가들도 '전염 효과'에 홍역을 앓았던 전례가 있다.
먼저 선전포고를 한 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다.
메이 총리는 지난 1월 연설에서 "영국을 처벌해 다른 국가들이 같은 길을 가지 않도록 징벌적 협상을 요구하는 일부 목소리가 있다. 이는 유럽 국가들에 재앙적인 자해 행위가 될 것이다. 친구의 행위도 아니다"고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영국에 '나쁜 딜'(bad deal)보다 '노 딜'(no deal)이 낫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둔다"고 경고했다.
메이 총리는 지난 29일 EU에 전달한 탈퇴 통보 서한에서도 이런 의지를 담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영국이 장래 관계 협정(영-EU 자유무역협정)이 떠난다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계 아래 교역해야만 한다"고 적고 "안보 측면에서도 합의 도달 실패는 범죄와 테러와의 싸움에서 우리의 협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적었다.
메이는 탈퇴에 관한 협상과 장래 관계를 위한 틀에 관한 협상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이같이 썼다.
리스본조약 50조는 "연합은 장래 관계를 위한 틀을 고려하고 해당국과 함께 탈퇴에 관한 협정에 대해 교섭하고, 이를 체결한다"고 규정한다. 어느 것을 먼저 해야하는지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
영국과 EU 양측 모두 '장래 관계를 위한 틀'로는 영-EU FTA 협정과 유럽 공동경찰인 유로폴과 유럽체포영장 체계 등 기존 범죄·테러 대처를 위한 안보협력체계를 EU를 떠난 영국의 자격으로서 새롭게 하는 합의를 지칭하고 있다.
탈퇴에 관한 협상은 영국과 EU 관계를 끊는 것들을 의제로 하는 협상으로 이른바 이혼합의금, 상대측에 거주하는 시민권자의 거주권한 보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이날 EU 정상들에게 보낸 브렉시트 협상 가이드라인 초안에서 협상 결렬을 빼놓지 않았다.
초안은 "EU는 합의를 얻기 위해 열심히 하겠지만, 협상이 실패하는 상황에 대비할 것"이라고 받아쳤다.
특히 협상 결렬 대비는 영국이 요구한 동시 협상을 겨냥해 꺼낸 것이다.
초안은 '협상에 대한 단계적 접근'을 명시하고 1단계에선 탈퇴에 관한 협상을 벌이고 "장래 관계의 틀에 관한 전반적인 고려는 2단계 협상에서 확인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단계 협상은 "1단계에서 만족할만한 합의 도달을 향한 '상당한 진전'(sufficient progress)이 이뤄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다만 서한이 "EU 정상회의가 '충분한 진전'이 이뤄졌는지를 결정한다"고 해 판단 주체를 EU 정상들로 위임했다.
이는 정상들의 '정치적' 타협의 여지를 열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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