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고통과 절망으로 다져진 詩 향한 의지
천양희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서울시 마들마을에 사는 한 그루/ 시인은 시력이 50년이나 된다 이 시인의/ 시력 중간 부분에는 70년의 나이테와/ 40년의 고립이 울울하게 자라고/ 있다 얼마나 정중한가" ('정중하게 인사하기' 부분)
원로 시인 천양희(75)가 여덟 번째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지성사)를 냈다. 1965년 등단한 시인은 반세기 시력의 대부분과 겹치는 실제 삶의 혹독한 고통과 비애, 외로움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며 견뎌왔다. 20여 년 전, 잘못 채워진 첫 단추에서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며('단추를 채우면서')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시인이다.
희수를 바라보는 시인은 이제 고통에서 인생과 시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의지를 되새긴다. 물론 인간이 무소유로 살다 가는 것은 거미가 "거미줄을 뽑지 않는 것처럼"('무소유') 어렵다. 시인도 "날마다 욕심 버리면서 무심하게" 살았지만 여전히 "감정 속에서 허우적"('물에게 길을 묻다 4')거린다.
하지만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色이 아니란 걸", "웃음의 절정이 울음이란 걸" 알고 나서 "웃음이란 이따금 울음을 지불해야 터질 수 있다"('생각이 달라졌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시인은 시를 쓴 지 50년째 되는 날 이렇게 적었다.
"꽃과 열매의/ 아픈 허리가 휘어지고/ 푹신한 의자가 삐걱거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어린아이가 늙어가고/ 늙은이가 죽어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 이제는/ 살려고 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50년' 부분)
시에 일생을 바치고 보니 "50년이 온통 회초리"로 느껴지지만 "통곡할 방을 설계할 건축가는 시인밖에"('시와 건축') 없으므로 시인의 숙명은 곧 특권이기도 하다. 61편을 4부로 나눠 실은 시집에는 뒤로 갈수록 절망을 시로 승화하고 욕망을 시에 집중하는 마음가짐이 담겼다.
"일생 동안 시 쓰기란 나에게는/ 진창에서 절창으로 나아가는 도정이었고/ 삶을 철저히 앓는 위독한 병이었다/ 그래서 의연하게 고독을 살아내면서 나아가지만// (…)// 고독이 고래처럼 너를 삼켜버릴 때/ 너의 경멸과 너의 동경이 함께 성장할 때/ 시를 향해 조금 웃게 될 때/ 그때 시인이 되는 것이지/ 결국 시인으로 존재하기 위해/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시작법' 부분)
김명인 시인은 발문에서 "절망을 살았기에 저절로 비장해지는 시, 삶과 시가 분간되지 않는 시인에게 시의 진실이란 허투루 살거나 쓰지 않겠다는 결심이며, 그 밖의 집은 짓지 않겠다는 각오뿐"이라고 했다. 120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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