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노인이 주타깃일까…젊은 여성 피해 속출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지난 1월 19일 오전 11시 10분 회사원 A(26·여) 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 중앙지검 검사라고 자신을 밝힌 전화 속 남성은 A씨의 개인정보가 도용돼 개설된 대포통장이 범죄에 악용되고 있어 당장 모든 예금을 출금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금융감독원이 관리하는 국가 계좌에 돈을 맡기면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남성의 말에 속아 적금을 해지한 현금 594만4천원을 몽땅 계좌 이체했다.
지난 2월 부산에 거주하는 의사인 B(26·여) 씨도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
서울지검 첨단수사 1팀 검사라고 소개한 남성은 B씨에게 명의가 도용돼 7건의 고소가 접수됐다며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금융자산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B씨는 '검사'가 불러주는 사건번호와 아이피(IP) 주소를 따라 가짜 검찰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피소된 사실을 확인한 뒤 두려움에 휩싸였다.
'검사'가 시키는 대로 은행계좌에 있는 3천500만원을 전부 인출한 B씨는 KTX를 타고 서울역까지 가서 검사가 알려준 금융감독원 직원을 만나 돈을 통째로 건넸다.
부산으로 내려오던 KTX에서 B씨는 국가가 관리하는 안전계좌에 돈이 입금됐는지를 확인하려고 '검사'에게 전화했지만, 신호음만 반복될 뿐이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을 주로 노린다는 보이스피싱의 타깃층이 젊어지고 있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올해 들어 부산 동부경찰서에 피해 신고가 접수된 보이스피싱 사건 10여 건 중 80%의 피해자가 20∼30대 여성이다.
회사원, 의사를 비롯해 어린이집·초등학교 교사 등 전문직 여성이 많았다.
대부분 검사를 사칭해 돈을 송금·인출하는 범죄 수법이다.
피해 금액은 최소 1천만원에서 많게는 3천만원까지 적지 않았다.
이 같은 보이스피싱 수법은 언론에도 수차례 보도됐지만 전화를 받은 피해 여성들은 전화금융사기를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경찰서에서 피해 조사를 받은 여성들은 하나같이 전화 속 남성을 "진짜 검사인 줄 알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해 검사인 척 흉내 내고 피싱사이트 등으로 피해자를 현혹하는 등 갈수록 범행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
특히 노후자금이나 쌈짓돈이 있는 노인에게 전화를 건 경우가 많았던 보이스피싱 조직이 최근 결혼자금 등 현금 유동성이 있는 20∼30대 전문직 미혼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오동철 부산 동부경찰서 지능팀장은 "사법·금융기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명의도용 운운하며 예금을 인출하라고 하면 경찰에 신고부터 하라"고 말했다.
올해 1월부터 3월 15일까지 부산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사건 피해 신고는 217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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