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천연사랑' 케미포비아에 빠진 韓사회

입력 2017-04-01 11:24
'이유있는 천연사랑' 케미포비아에 빠진 韓사회

천연·친환경 제품 인기급증…유해물질 우려 제품 불매↑

전문가 "정확한 정보 부재가 영향 미쳐…당분간 지속될 것"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화학제품에 대한 공포를 뜻하는 '케미포비아' 현상이 확산하면서 천연 및 친환경 제품에 대한 인기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나친 케미포비아가 사회 불안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정확한 정보가 부재한 사회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 화학물질은 가라…친환경·천연 제품 인기

1일 11번가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친환경·천연 주방세제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연 가습기는 32%, 공기정화식물은 48%, 천기저귀는 53% 성장했다.

G마켓에서도 지난해 공기정화식물의 판매량은 49%, 면생리대는 35% 늘었다.



천연 다목적 세정제인 애경의 '엄마의 선택 100% 베이킹소다'의 판매량은 2015년 123.6%, 지난해 35.6%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피부과 화장품이나 무방부제·무화학 성분을 강조한 일명 '착한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국내 피부과 화장품 시장은 매년 15∼20%씩 고성장하고 있고, 피부과 화장품 브랜드들은 기존 스킨케어 위주의 라인에서 벗어나 색조 제품들을 활발히 출시하고 있다.

'EWG 등급'과 '에코서트(ECO-CERT) 인증' 등 성분 인증을 받는 것 또한 뷰티 브랜드들의 최근 추세다.

SK플래닛 11번가 주방세제담당 이규훈 매니저는 "지난해 유해물질 검출 이슈로 인해 최근 친환경 및 천연 제품을 찾는 고객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며 "주방세제의 경우 저자극, 친환경 원료이며 세척력도 우수한 제품 위주로 판매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 '가습기 살균제 공포'…한국을 덮친 케미포비아

한국 소비자들의 '케미포비아'는 2011년 처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인해 증폭됐다.

수백명의 피해자를 낳은 가습기살균제 사태 후 가습기살균제는 시장에서 사라졌고, 페브리즈·방향제 등 흡입할 수 있거나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화학제품에 대한 불안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실제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도 '혹시'라는 불안감은 소비자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피앤지(P&G)는 지난달 외국 소비자잡지에서 피앤지 기저귀 일부 품목에서 살충제에 쓰이는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검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곤욕을 치렀다.

한국피앤지는 이 화학물질이 극미량만 발견됐고 유럽의 안전 기준에도 한참 못 미쳐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엄마들을 중심으로 불매 및 환불 움직임이 일었고, 대형마트들은 피앤지 일부 품목의 판매를 잠시 중단하기까지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팸퍼스 기저귀를 검사해 이달 중순 4개 제품 모두 다이옥신과 살충제 성분이 미검출됐다는 결과를 밝혔으나 한번 돌아선 부모들의 마음을 다시 돌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중순에는 아모레퍼시픽 등 주요 화장품·생활용품 업체들의 치약 등 제품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일종인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 혼합물(CMIT/MIT)이 포함된 것이 적발돼 문제가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적발된 치약들의 CMIT/MIT 함유량이 미미하고 양치 후 입 안을 물로 씻어내는 제품 특성상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밝혔는데도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3분기 실적은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 정확한 정보 부재가 케미포비아 낳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케미포비아'가 당연한 현상이라고 분석하면서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은 존재이고 타인에 동조하는 경향이 강해 제품에 대한 설명보다는 이미지에 많이 좌우된다"며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특히 치명적인 이미지가 한번 충격을 주면 쉽게 떨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예전에도 환경 유해물질은 많았을 텐데 먹고 살기 급급해 신경을 못 쓰다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니 갑자기 크게 와 닿는 것"이라며 "아직은 쉽게 흥분했다가 금방 잊는 경우도 많으니 우리 사회는 안전 불감증과 청결 강박증이 혼재한 과도기를 거치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 교수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 사고 등을 통해 밝혀지니 소비자들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가 주는 정보도 소비자들이 잘 못 믿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데 정부가 올바른 정보를 빨리 제공해 신뢰를 높여야만 이러한 만연한 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amj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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