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명의' 가짜 공문까지 동원한 보이스피싱 조직

입력 2017-03-30 17:05
수정 2017-03-30 22:38
'검찰총장 명의' 가짜 공문까지 동원한 보이스피싱 조직

남편이 경찰인 직장동료 신고로 피해 면해

(대전=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대전에 사는 20대 직장인 A씨는 이달 중순 전화 한 통을 받고 감짝 놀랐다.

자신을 '검사'라고 소개한 한 남성이 "당신 통장이 범죄에 이용됐다. 통장 명의자도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적이 전혀 없는 A씨는 너무 억울했고, 한편으로 두렵기까지 했다.

이 남성은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 뒤 메일로 검찰총장 명의의 공문까지 보냈다.

이 공문에는 '명의 도용 피해자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 해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고, 검찰총장 친필 사인과 직인도 있었다.

'접수인'에는 A씨 본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남성은 통화 내용을 주변인에게 알릴 경우 가중 처벌돼 범죄 피해 금액을 A씨가 모두 변상해야 한다고 겁을 주기까지 했다.

혼자 발만 동동 구르던 A씨 모습을 본 동료가 자초지종을 물었고, A씨는 동료의 휴대전화로 '검찰 수사를 받으러 간다'는 취지의 짧은 메모만 남기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마침 동료의 남편은 현직 경찰관이었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같다'는 남편 말에 동료가 112 신고를 했고, 출동한 인근 카페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과 통화 중이던 A씨를 발견했다.

경찰관과 직장동료의 발 빠른 조치로, A씨는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A씨가 이 상황을 온전히 믿게 한 다음 계좌 이체 등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이 가짜 공문서까지 동원해 피해자들을 속이려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사실 보이스피싱 조직이 꾸민 공문을 보면 허술한 점이 적지 않았다.

공문 제목이 '서울 중앙대검 2017년 조사5027호 안건'인데,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은 있지만 '서울 중앙대검'은 없다.

정부기관에서 사용하는 정돈된 서식도 아니다. 이들이 공문에서 명시한 법령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보이스피싱 조직이 '명의가 도용됐다'고 겁을 줘 당황한 상태에서는 이런 점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더욱이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피해자들이 공문을 검토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전화를 끊지 못하게 했고, 주변인에게 알릴 경우 불이익을 준다고도 했다.

전화하는 동안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지 못하도록 '데이터를 차단하라'는 지시까지 했다.

경찰은 기존 보이스피싱 수법이 많이 알려지면서, 피해자들을 속일 새로운 방법으로 '가짜 공문'이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에서 공문을 보내왔을 때는 해당 기관에서 보낸 공문이 맞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며 "해당 공문을 토대로 수사기관을 사칭한 전화가 오면 바로 끊고 수사기관에 직접 문의하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so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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