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까지 점령한 들고양이…'생태계 폭군' 됐다(종합)

입력 2017-03-30 14:11
국립공원까지 점령한 들고양이…'생태계 폭군' 됐다(종합)

북한산 등지서 다람쥐·토끼·꿩 마구 사냥, 탐방객도 위협

천적 없고 번식 빨라 생태계 교란…"중성화도 한계, 유기 말아야"

(전국종합=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북한산 국립공원 사무소는 6년째 들고양이와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벌이는 중이다.

탐방로나 사찰 주변을 점령한 고양이가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탐방객을 위협하면서 시작된 풍경이다.





여우와 표범 등이 사라진 한반도에서 버려져 야생이 된 들고양이는 삵, 담비, 멧돼지와 더불어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등장했다.

국립공원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는 들고양이가 다람쥐나 작은 새 등을 사냥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포착된다.

일부 공원에서는 '생태계 폭군'이 된 들고양이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중성화(TNR·Trap-Neuter-Return) 사업을 추진하는 중이다. 고양이를 붙잡아 중성화한 뒤 그 자리에 다시 풀어놓는 방식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의 경우 2012년부터 작년까지 200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중성화했다.

이 공원 관계자는 "영역생활을 하는 들고양이는 제거하더라도 곧바로 다른 개체가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우는 특성이 있다"며 "들고양이와 공존하는 차원에서 중성화 사업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천적 없는 들고양이 '생태계 폭군'으로 떠올라

북한산에서도 들고양이가 가장 많은 곳은 도봉구 쪽이다. 도심과 가깝다 보니 가정에서 키우다 버린 고양이가 산으로 올라와 터를 잡은 것이다. 2013∼2015년 조사에서 도봉구 권역의 고양이는 70마리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사찰이나 저지대에 살지만, 먹이를 찾아 고지대로 이동하는 개체도 적지 않다. 이들이 노리는 먹잇감은 등줄쥐·다람쥐 같은 설치류에서부터 조류까지 다양하다.

대전 보문산에서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하늘다람쥐 꼬리가 들고양이 서식처에서 발견된 사례도 있다.





과거 숲에 흔하던 꿩이나 토끼, 다람쥐 같은 야생동물을 사라지게 만든 주범으로 들고양이가 지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부 들고양이는 등산로나 휴식공간에 갑자기 뛰어들어 탐방객을 놀라게 한다. 번식기가 되면 공격성을 보이고,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 불쾌감을 주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이들 고양이의 번식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점이다. 한 번에 4∼5마리의 새끼를 낳고, 한해 2∼3차례 번식하기도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생태자원부 김남호 계장은 "도심이나 상가에서 가까운 국립공원은 예외 없이 고양이 때문에 골치를 썩인다"며 "번식력이 워낙 좋아 잠시만 방치해도 개체수가 급격히 불어난다"고 지적했다.

◇ 집단 영역생활…일시적인 제거 해결 방법 못 돼

태백산국립공원은 최근 들고양이 퇴치계획을 내놨다가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지난해 덫으로 4마리를 포획해 안락사시킨 뒤 올해부터 이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게 논란이 됐다.

동물보호단체는 고양이를 붙잡아 제거하는 것 자체가 동물 학대이고, 이런 방식이 들고양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에서 활동하는 한혁씨는 "생태계 보전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 국립공원에서 들고양이를 붙잡아 안락사 시키는 앞뒤 안 맞는 행정을 했다"며 "들고양이를 생태계의 일원이면서 자연의 원래 주인으로 대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영역생활을 하는 고양이는 1마리가 사라지면 곧바로 다른 개체가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한다"며 "일시적인 포획 등은 고양이 개체수를 관리하는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속리산 국립공원도 2000년대 후반 비슷한 일로 홍역을 치렀다.

공단 측이 말썽꾸러기 들고양이 45마리를 포획해 보호시설로 보냈는데, 이 중 30마리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죽는 일이 생긴 것이다.

환경단체는 공단 측이 들고양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비판했고, 포획사업은 시작되자마자 중단됐다.

◇ 길고양이 문제도 심각…중성화로 공존 시도

국립공원 등 야생에 적응한 들고양이 못지않게 주택가에 사는 길고양이 문제도 심각하다.

휴지통을 뒤지거나 음산한 울음을 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초 경기도 포천에서 조류 인플루엔자(AI)에 감염돼 죽은 고양이처럼 질병을 옮기는 매개로 지목된다.

최근 길고양이 대응책으로 중성화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6억8천만원을 들여 9천마리의 길고양이 중성화 계획을 내놨다. 이 중 1천마리는 동물보호단체나 수의사회 등 민간차원에서 추진한다.

중성화된 고양이는 특유의 음산한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 공격성도 현저히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도 올해 길고양이 5천마리를 중성화할 계획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새끼나 임신·수유 중인 고양이는 중성화 대상에서 제외하고, 수술 뒤에는 왼쪽 귀 끝을 1㎝ 정도 잘라 멀리서도 중성화 여부를 알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성화 사업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잇다.

특정지역 고양이의 70% 이상을 한꺼번에 중성화하지 않는 한 개체수 조절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으로 고양이 유기를 줄여야 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생후 3개월 이상의 개(犬)한테만 적용되는 반려동물 등록제를 고양이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학대방지연합 관계자는 "동물 등록제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고양이도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민들이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하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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