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의 기다림 이젠 가족 품으로"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입력 2017-03-28 17:02
수정 2017-03-28 17:21
"3년의 기다림 이젠 가족 품으로" 세월호 미수습자 9명

꿈많던 아이들, 끝까지 학생 지킨 선생님, 제주도 새 출발 꿈꾼 가족들

(안산=연합뉴스) 이영주 류수현 기자 = 세월호 참사 3년여만인 28일 세월호 인양 현장에서 미수습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됐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들려온 소식에 눈물을 쏟으며 오열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할 미수습자는 모두 9명.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던 조은화양, 허다윤양, 박영인군, 남현철군, 단원고 교사 고창석씨, 양승진씨, 부자지간인 권재근씨와 권혁규군, 그리고 이영숙씨다.

◇ 단원고 학생 4명…'별이 된 꿈' 은화·다윤·영인·현철

조은화(사고 당시 2학년 1반) 양은 학창시절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우등생이었다. 수학을 유독 좋아했고 회계 분야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꿈이었다.





엄마와도 무척 가까운 딸이었다.

엄마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앞에 앉아서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주고, 아침에 학교 갈 때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하굣길에 간식거리를 사와 건넬 정도로 정 많은 아이였다.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던 허다윤(2반) 양은 중학생 때부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해왔다.

어렸을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즐기는 데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했던 여고생의 꿈은 세월호 침몰과 함께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윤이는 엄마에겐 친구 같은 딸, 아빠에겐 애인 같은 딸이었다.

3년 전 수학여행 길에 오르면서 아버지의 검정 모자가 마음에 든다며 그 모자를 빌려 가던 것이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2남 중 막내인 박영인(6반)군은 성격도 발랄하고 쾌활해 부모님에게 딸 같은 아들이었다. 주말마다 부모님 여행에 항상 따라나서는 '엄마·아빠 바라기'이기도 했다.

영인이는 만능스포츠맨으로도 통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야구 등 구기 종목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볼링부 활동도 적극적으로 했다.

특히 축구를 좋아했고 체대로 진학해서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하고 싶어했다.

영인 군의 어머니는 사고 전 아들이 "축구화를 사달라"고 했지만, 미처 사주지 못한 게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사고 이후 새 축구화를 팽목항에 가져가 영인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영인 군의 아버지는 "영인이보다 먼저 발견된 교복과 운동복 등은 아직 안산 집에 그대로 있다"며 "영인이가 웃던 모습이 조금 전에 본 것처럼 생생하고 언제든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고 말했다.

영인이와 같은 반이었던 남현철 군은 5반 고(故) 이다운 군의 자작곡 '사랑하는 그대여'의 작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현철이는 기타실력도 상당했다.

◇ 단원고 교사 2명…끝까지 학생들 곁 지키며 '살신성인'

고창석 교사는 2014년 3월 단원고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변을 당했다.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고 교사는 대학생 때 인명구조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다. 세월호 사고 당일에도 고 남윤철 교사와 함께 학생들의 탈출을 돕느라 본인은 정작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사고 후 조문 온 한 제자는 가족에게 '선생님께서 2005년 중학교 근무 당시 학생휴게실에 불이 나자 소화기를 들고 가장 먼저 뛰어와 진화하셨다'는 기억을 전해주기도 했다.

고 교사는 단원중 교사였던 아내(39)를 살뜰하게 챙기기로도 유명했다.

고 교사는 행여 아내가 아침밥을 먹지 않고 출근하면, 학교 사이 담장 너머로 간식거리를 챙겨주곤 했고,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는 미리 꽃을 준비하는 세심한 남편이었다.

고 교사의 아내는 세월호 참사 당일 아침 남편으로부터 받은 "애들을 돌보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문자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고 전했다.

양승진 교사는 학생들에게 듬직한 선생님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선체가 기울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학생들이 있는 배 안으로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 일반 승객 3명…제주도로 이사해 새 출발 하려다 참변

세월호 미수습자 중 나이가 가장 어린 권혁규(사고 당시 7세)군은 아버지 권재근(당시 51세·미수습)씨와 어머니 한모(당시 29세·사망)씨, 여동생 권지연(당시 6세)양과 제주도로 향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권 군 가족은 이날 화물트럭에 이삿짐을 한가득 싣고 제주도의 새집으로 이사하던 길이었다.

권 군의 아버지가 서울 생활을 끝내고 감귤 농사를 지으려고 제주도 귀농을 결정했던 터였다.

평소 한 살 어린 여동생을 끔찍이도 아꼈다던 권 군은 사고 당시에도 어머니를 도와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탈출을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양은 이후 단원고 2학년 박호진 군 등 생존자들에게 발견되면서 구조됐으나,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는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됐다.

또 다른 미수습자인 이영숙씨는 1년 뒤 제주도로 이사 올 아들의 짐을 싣고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어렵게 아들을 키워 온 이씨는 아들과 떨어져 지낼 때가 많았기 때문에 머지않아 아들과 함께 지낼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오다 간절한 소망을 차디찬 바다에 가라앉히고 말았다.

young8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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