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 실리콘밸리에선 안 통해요"

입력 2017-03-28 15:54
"맨땅에 헤딩? 실리콘밸리에선 안 통해요"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콘퍼런스…청년 창업 실패담 공유

"현지 네트워크·문화 이해 부족…실패 경험 바탕으로 재도전"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실리콘밸리에서는 돈과 인맥 없이 '맨땅에 헤딩'하다가는 뇌진탕 걸립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갔지만 결국 가진 돈을 다 잃었죠."

창업의 꿈을 갖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진출했던 이승윤 씨는 뼈아픈 실패의 경험을 이렇게 돌아봤다.

그는 28일 경기도 성남 네이버 그린팩토리 커넥트홀에서 열린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2017' 콘퍼런스에서 "기술 분야의 공동 창업자가 없으면 투자자들이 명함도 안 받아주는 곳이 실리콘밸리"라며 "네트워크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은 스타트업 민관협력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네이버의 후원을 받아 2014년부터 매년 열고 있다. 올해에는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창업가 11명과 투자자들이 연사로 나섰다.

연사 중 한 명인 이 씨는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한 후 학교 선배와 실리콘밸리로 건너갔다. 성공의 꿈에 부풀었지만, 비싼 물가로 악명이 높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할 곳을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찾은 곳은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와 마약 사건이 일어나는 빈민가였다.

그는 "3개월 동안 그런 곳에서 살다 보니 너무 위축됐다"며 "결국 투자금 5만 달러를 모두 잃고 3개월 만에 철수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런던에서 미디어 플랫폼을 창업해 경험을 쌓은 뒤 2016년 실리콘밸리에 재도전했다.

'맷집과 네트워크를 충분히 쌓았다'는 그는 기술 전문가와 함께 모바일 소설 연재 플랫폼 래디쉬(Radish)를 창업해 성공적으로 이끌어오고 있다.

이 씨는 "초기에는 2∼3명의 소수 투자자에게 매달릴 게 아니라 여러 투자자에게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며 "저격수가 아닌 기관총(mahine gun)이 되라"고 조언했다.

고객조사 업체 미싱크스(Methinks)의 윤정섭 대표도 3년 정도 미국 스타트업을 운영한 경험을 발판으로 2013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도전했지만,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미국 NHN 대표까지 역임한 그는 "투자금 5억원을 모아 소셜 게임을 만들었지만, 초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이용자들이 급격히 유입되다 보니 유지하기가 힘들었다"며 "타깃층을 막연히 도시에 사는 20∼30대 여성으로 잡았지만, 정확히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몰랐다"고 회상했다.

타깃층 공략에 실패한 그는 출시했던 게임을 접고, 지난해 타깃 소비층 조사 업체 미싱크스를 창업했다. 자신의 실패 경험이 창업의 발판이 된 것이다.

익명 메신저 블라인드의 김성겸 매니저는 지난 2014년부터 2년 동안 블라인드의 미국 진출을 이끌며 역시 '맨 땅에 헤딩'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미국에는 지인만 있을 뿐 우리 사업을 나서서 도와줄 친구가 없었다"며 "결국 만나는 사람마다 술을 사주는 나만의 방식으로 친구들을 만들었고, 이를 발판으로 이용자를 늘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현지 전문가들의 조언도 이어졌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트로이 말론 전 에버노트 아시아태평양 부사장은 "실리콘밸리는 매우 역동적인 만큼 변화 흐름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고, 글로벌 벤처캐피털 500스타트업의 폴 유 최고재무관리자는 "투자자와 재정 상황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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