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환자 불신 허물 것"…의료소송 전문 장애인 변호사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출신 이성준 변호사…"나도 환자…마음 잘 압니다"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목숨값이 땅값만 못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의료분쟁 조정으로 환자가 받은 가장 많은 보상금이 20억원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아는데 토지분쟁 소송을 하는 변호사 얘기를 들어보면 청구금만 100억원이더라고요."
대학생 때 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이성준(41·사법연수원 41기) 변호사는 지난달 5년 가까이 몸담았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그만두고 의료사고와 산업재해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27일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 변호사는 누군가를 위해 더 치열하게 싸워보고 싶은 마음에 안정적인 직장을 떠났다고 했다. 중재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500건이 넘는 의료분쟁을 담당하면서 그는 애끓는 사연을 수없이 접했다고 한다. 원만히 합의에 이른 사례도 있지만, 방대한 시간을 들였음에도 조정에 이르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럴 때 한계를 느꼈다.
환자의 편에 서서 병원과 다투는 일은 다른 분쟁영역에 비하면 '돈 되는 일'은 아니다. 소송 법리를 적용하면 환자가 승소할 확률은 높지 않고 이겨도 성공보수가 많지 않아서다.
이 변호사를 움직인 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었다. 보건대학원을 다니며 주경야독해 쌓은 이론적 기반을 실제 사례에 적용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사실 이 변호사 자신은 의료 혜택을 톡톡히 봤다고 말한다. 사고로 1급 장애를 얻었지만,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아 다시 책을 펼치고 사법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의사, 환자 어느 한쪽의 편에만 서 있지 않고 중간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환자로서 치료를 받고 있기도 하고. 양측 사이에 생긴 불신의 폭을 줄이는 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 해도 분쟁이 생기면 의사가 마음을 더 써줬으면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의사가 환자를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고민하듯이 사고가 났을 때 '뭐가 문제였을까'하는 생각을 한 번만 해도 환자의 마음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중재원 근무 시절 국회를 통과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신해철 법)' 개정안을 양날의 칼과 같다고 평가하면서 '친정' 중재원에 대한 애정 담긴 조언도 내놓았다.
그는 "환자 입장에서 보상은 차치하더라도 왜 사고가 났는지 궁금하기 마련"이라며 "병원 동의가 없어도 사고조사가 이뤄지니 환자는 환영하겠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반발하며 조정 결과를 수용하지 않으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은 중환자를 기피하고 중재원이 노력해도 병원이 그 결과를 수용하지 않아 조정성립률이 낮아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법을 개정한 데 만족할 게 아니라 의료분쟁 전문해결기관으로서 중재원의 공신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실효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