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렌털하고, 중고시장 자주 가고, 커피는 대용량으로(종합)

입력 2017-03-26 14:54
명품 렌털하고, 중고시장 자주 가고, 커피는 대용량으로(종합)

경기불황에 립스틱·술·담배는 호황…1천원숍 자주 이용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이도연 기자 = 경기불황이 지속하면서 립스틱, 술, 담배 등 '불황형 소비품목' 매출이 늘고 있다.

주머니가 얇아진 시민들은 대용량 제품이나 중고 제품 등을 구매하는 실용적 소비 성향도 보인다.

또 저가 생활용품점인 다이소와 명품 잡화 사이트 렌털 서비스 등도 불황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 부진으로 이런 현상이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불황기 '립스틱 효과' 증명…립스틱 매출 최대 120% 급증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오히려 립스틱 판매가 증가한다는 '립스틱 효과'라는 법칙이 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에 경제가 어려운데도 립스틱 매출만은 오르는 기현상에 경제학자들이 붙인 용어다.

불황기에 돈을 최대한 아끼면서도 품위를 유지하고 심리적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성향으로 립스틱 매출이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26일 온라인쇼핑사이트 G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G마켓의 색조 화장품 판매는 전년보다 34% 늘었다.

색조 화장품 가운데 립스틱이 36%, 매니큐어가 26% 각각 증가했다.

2015년에는 색조 화장품 매출이 전년 대비 26%, 2014년에는 9%가 늘어나는 등 최근 3년 사이 매출이 꾸준히 증가했다.

롯데백화점의 지난해 색조 화장품 매출도 전년보다 17.8% 증가했다.

헬스·뷰티 스토어 CJ올리브영도 지난 2∼4일 진행된 올해 첫 세일 매출을 집계한 결과, 색조 화장품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30% 늘었으며 이 가운데 립스틱은 무려 120%나 급증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특히 눈에 띄는 붉은 계열의 강렬한 컬러 제품이 인기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주류 중에서는 싼 가격에 쉽게 취할 수 있는 서민 술인 소주 판매가 증가했으나 위스키 같은 고급술은 반대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한 해 대형마트인 이마트에서 한 병에 1천190원에 팔리는 소주 매출은 전년보다 8.7%, 올해 1∼2월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7.4% 각각 늘었다.

반면 700㎖ 한 병에 4만4천700원인 시바스 리갈 12년산을 포함한 위스키 매출은 이 기간 각각 0.5%와 0.8% 줄었다.

또 서민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담배 역시 지난해 약 729억 개비가 팔려 전년(667억 개비)보다 9.3% 증가했다.



◇'소비 실용주의' 대용량 화장품, 다이소·중고물품 사이트도 인기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이어 '가용비'(가격 대비 용량)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소비자들이 싼 가격에 대용량 제품을 사려는 욕구가 반영된 소비 모습이다.

이에 맞춰 업체들도 대용량 제품을 새롭게 내놓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는 지난해 1ℓ에 달하는 대용량 커피 '메가 아메리카노'(946㎖)를 출시했다. 스몰 사이즈(355㎖)나 레귤러 사이즈(450㎖)보다 양이 2∼3배에 이르지만 단위당 가격은 메가 사이즈가 스몰 사이즈보다 절반가량 저렴하다.

서울우유도 경제적 부담 없이 요구르트를 즐길 수 있도록 일반 요구르트(60㎖)와 비교해 12배 이상 많은 서울우유 750㎖ 오렌지 요구르트를 내놓았다.

식음료업계 관계자는 "가격 대비 용량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저렴한 대용량 제품이 많이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장 모든 제품이 거의 5천원 이하이고 2천원 이하 제품 비중이 70∼80%에 이르는 다이소의 지난해 매출은 1조5천600억원으로 전년보다 30% 늘어났다.

2012년 850개 정도였던 다이소 점포 수는 2015년 1천 개를 넘어선 데 이어 올해 1월 말 기준으로는 1천150개에 이르렀다.

서울 마포구에서 혼자 사는 직장인 이 모(31) 씨는 "휴지통, 시계, 옷걸이, 양말, 컵, 식기대 등은 모두 다이소에서 샀다"면서 "월급은 제자리라 싸고, 품질도 나쁘진 않아 가성비가 좋은 다이소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쇼핑사이트에서도 중고 매출이 크게 늘었다.

G마켓의 지난해 중고 제품 판매는 전년보다 240%, 옥션에서는 15% 각각 증가했다.

특히 품목별로 살펴보면 G마켓의 경우 중고 소형가전이 2천650%, 중고 골프채는 186%나 급증했다.

G마켓 관계자는 "골프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불황이라 중고로 구매하는 것으로 보이고 가전에서도 1인 가구 증가세와 불황이 맞물려 중고 판매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명품 잡화 사이트 렌털 서비스도 이용객이 늘고 있다. 명품 가방을 사려면 몇백만 원씩 내야 하지만, 이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면 10분의 1 정도의 가격으로 한 달 동안 가방을 빌려 들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김 모(29·여) 씨는 "렌털 서비스로 한 달 내내 가방을 들고 다녀도 다른 사람들은 내 가방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며 "어차피 비싼 돈을 주고 사도 몇 개월 들고 다니면 질리기 마련인데 저렴하게 빌려 들고 다니다 반납하면 돈도 적게 든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인 소비가 여전히 줄어들고 있다"면서 "조기 퇴직 등도 많아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사람들이 돈을 아끼려 하다 보니 '가성비'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도 "일본에서 과거 내수가 살아나지 않았을 때 백엔 숍 등 다이소와 같은 중저가 제품을 파는 곳이 인기를 끌었다"며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계속 가성비나 싸고 좋은 제품을 찾는 '가치소비' 등이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sungjin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