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는 문화재이자 콘텐츠…젊은이에게 미감 알리고 싶어요"

입력 2017-03-26 10:32
"서예는 문화재이자 콘텐츠…젊은이에게 미감 알리고 싶어요"

김정남 국립무형유산원 과장, 가나인사아트센터서 첫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보로 지정된 울진 봉평리 신라비도,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도 서예잖아요. 사료적 가치가 있는 서예 작품은 모두 문화재라고 할 수 있죠. 또 서예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한류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 마련된 전라북도 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26일 기자와 만난 벽암(碧巖) 김정남(57) 작가는 '서예 예찬론'을 풀어놓았다. 처음으로 서예 개인전을 연 그의 본업은 공무원.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장, 덕수궁관리소장을 거쳐 작년 1월부터 국립무형유산원 기획운영과장을 맡고 있다.

어렸을 때 부친 슬하에서 서예를 배운 김 과장은 대학 졸업 후 전업 작가를 꿈꿨을 정도로 서예를 좋아했다. 공무원이 된 뒤에도 짬짬이 서예 공부를 하다 구당 여원구 선생을 사사했고, 2012년에는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는 실기뿐만 아니라 서예 이론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자경전진작정례의궤'의 서체미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조선 왕들의 글씨인 어필(御筆) 연구였다.



2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 김 과장은 지난해 말부터 제작한 작품 60여 점을 선보인다. 도립미술관의 개인전 작가 공모에 당선된 뒤 하루에 서너 시간씩만 자며 글씨를 썼다.

그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말인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되새겼다"며 "붓글씨를 배운 적이 없고 서예에 흥미가 없는 젊은이들에게 서예의 의미와 미감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술은 동시대인에게 통해야 하고, 그에 맞춰 변할 필요도 있다"며 "청년의 눈높이에 맞춰야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에 나온 작품 중에는 전통적인 법도에 따라 쓴 것도 있지만, 종래의 서예와는 다른 파격적인 느낌의 글씨도 있다. 예를 들어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 노래 가사를 기타 모양으로 쓰거나 주기도문을 십자가 안에 적었다.

또 훈민정음 해례본의 어제 서문을 한 글자씩 적어 국보 1호 숭례문을 표현하고, 단테의 신곡 원문으로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로마에 문을 연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의 벽에도 이와 비슷한 작품인 '숭례문'과 '콜로세움'을 썼다.

조민환 성균관대 교수는 "김정남의 작품에서는 남과 다른 독특한 것을 창안하고자 하는 발칙함과 기발한 상상력이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김 과장은 문화재에서 서예 작품의 소재를 발굴하기도 했다. 전시장에서는 16세기 후반 사대부가 여성이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와 1323년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다 침몰한 '신안선'의 접시에서 나온 글귀를 볼 수 있다.

그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주제로 한 서예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암각화는 글씨가 발명되기 전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기 때문이다.

"서예가 한국에 갇힌 문화가 아니라 세계에서 통용되는 문화가 되면 좋겠어요. 문화재청 공무원이라는 특별한 경력과 경험을 살려 저만의 글씨를 쓰고 싶습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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