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10명 중 9명은 '윗선'에 반대시 인사상 불이익 우려"
국제인권법연구회 전국 법관 이메일 설문조사…"사법관료화 증명"
"법관의 독립 위해 사법행정 개선" 주장…전국 판사 약 1/5 참여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법관 10명 중 8∼9명은 대법원장이나 법원장의 사법정책·사법행정에 반대하면 인사나 사무분담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번 조사는 2천900명 안팎인 전체 판사 가운데 약 5분의 1이 응답한 결과를 바탕으로 삼았다.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25일 공개한 '사법독립과 법관인사제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법관 502명 중 443명(88.2%)이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전국 법관은 2천900명 안팎(지난해 9월 기준 현원 2천871명·정원 외 법관 포함시 2천902명)이다. 설문조사에는 전국 판사의 약 17%가 참여한 셈이다. 이 연구회 회원으로는 300∼400명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답변자 중 '대법원장, 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 표현을한 법관도 보직, 평정, 사무분담 등에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는 설문에 60.8%(305명)는 "공감하지 않는 편이다", 27.5%(138명)는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부 정책이나 상급심과 다른 판결을 할 경우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답변은 응답자의 절반에 조금 못 미쳤다.
'행정부 또는 특정 정치세력의 정책에 반하는 판결을 한 법관도 보직, 평정, 사무분담 등에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는 질문에 36.5%(183명)는 "공감하지 않는 편이다", 8.8%(44명)는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해 총 45.3%의 비율을 보였다.
'상급심 판결례의 판단내용에 반대하는 판결을 한 법관도 보직, 평정, 사무분담 등에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는 물음에는 47%가 공감하지 않는다고 했다. 38.4%(193명)는 "공감하지 않는 편이다", 8.6%(43명)는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연구회 김영훈(43·사법연수원 30기) 서울고법 고법판사(지법 부장판사급)는 "법관이 사법행정권자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일반화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국민의 인권보장이라는 사명보다 인사권자의 기준을 더 의식하는 등 법관 사회가 관료화돼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판사들은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독립'을 위해 사법행정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개선이 필요한 사법행정 분야가 있는지 묻자 96.6%(483명)가 "있다"고 답했다.
개선이 필요한 분야로 89%(438명)는 '승진, 전보, 선발성 보직 등 인사 분야'를, 72%(354명)는 '평정, 재임용 등 직무평가 분야'를 각각 꼽았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법관 제청 절차를 고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 응답자의 71.6%(355명)가 "있다"고 했다. "없다"는 7.3%(36명)에 그쳤다.
개선방안으로는 '법률가 직역, 국회, 법관 등의 대표로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대법원장의 관여를 줄인다'(64.3%·241명), '후보자 천거절차와 추천위 회의를 가능한 공개해 사회·정치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한다'(61.3%·230명) 등이 제시됐다.
법관들이 소속 법원장의 권한을 의식하는지에 대해선 91.6%(458명)가 "의식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법원 판사회의가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지에는 86.2%(431명)가 "적절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조사는 연구회가 지난달 전국 법관을 상대로 이메일을 통한 설문 방식으로 진행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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