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비용' 아시나요"…미래 기약없다 생각에 홧김소비 증가

입력 2017-03-27 07:50
수정 2017-03-27 10:19
"'시발비용' 아시나요"…미래 기약없다 생각에 홧김소비 증가

직장인 신조어 '시발비용' SNS 확산

"일단 가진 돈 써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프로야근러'(야근을 자주 하는 직장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직장인 김모(31)씨에게 택시 귀가는 언젠가부터 일상이 되어버렸다.

출근길에는 굳게 마음을 다잡고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올라타 어떻게든 회사로 가지만 밤 10시, 11시가 다 돼서 일이 끝나는 날엔 1시간을 걸려 퇴근할 생각에 한숨부터 나온다.

김씨는 "사실 택시를 이용해 퇴근을 일삼다 보니 한 달 교통비가 30만 원 가까이 나와 아깝다"며 "그래도 야근을 하다 보면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이 정도도 못 쓰나 하는 생각이 들어 또 택시를 잡게 된다"고 털어놨다.

김씨와 같은 피곤한 직장인의 삶을 반영하듯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드는 비용인 '시발비용'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시발비용은 충동구매와 비슷한 소비행태를 일컫지만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이라는 의미를 강조한다.

27일 인공지능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2014년부터 올해 3월 19일까지 블로그(4억6천860건), 트위터(82억6천210만건)를 분석해 시발비용 버즈량(언급량)에 대해 알아봤다.





시발비용이 직장인에게 많은 공감을 얻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한 트위터 사용자가 그 정의와 예시를 트위터에 게시하면서부터다.

'스트레스받고 홧김에 치킨 시키기…평소라면 대중교통 이용했을 텐데 짜증 나서 택시 타기'로 시발비용에 대한 예시를 소개한 이 트위터 글은 1만9천503회의 리트윗을 기록하며 누리꾼 사이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시발비용은 지난해만 SNS에서 1만3천760건이 언급됐다. 올해 언급량은 약 두 달여 동안 1만9천774건에 이른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도 2천500건을 넘어섰다.

대표적인 시발비용 지출 품목은 택시비다. 연관어 중 '택시'가 2만5천208건으로 가장 관련 언급량이 많다.

택시 다음으로는 음식에 관한 언급이 많았다.

흥미로운 부분은 스트레스라는 단어와 언급된 음식의 경우 술, 커피, 과자, 초콜릿 등 기호식품이나 군것질이 많았지만 시발비용과 함께 언급된 음식은 이보다 가격이 비싸고 열량이 높은 치킨, 족발 등이 연관어로 많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시발 비용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그룹은 단연 직장인이다. 시발 비용과 함께 언급된 '퇴근'이라는 단어가 5천551건에 달한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다음소프트는 "시발 비용과 함께 언급된 택시비, 치킨, 족발 등은 아르바이트생이나 취업준비생에겐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있는 품목"이라며 "직장인 사이에서 돈 벌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데 이 정도도 못 쓰느냐는 마음에 이 단어가 언급되곤 한다"고 설명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우리나라 직장인의 경우 돈을 열심히 저축해도 미래에 대한 기약이 없으니 일단 가진 돈을 써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이런 신조어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쁜 일상 속 딱히 스트레스 해소 방안을 찾지 못해 소비로 눈을 돌리는 경향도 크다"고 분석했다.

sujin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