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치 일상화에 日대사는 '함흥차사'…한일관계 돌파구 안보여
전문가 "삐걱대는 관계 구조화…대일외교서 국익 포기해선 안 돼"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한일관계의 냉각기가 장기화하면서 외교적 항의 표시마저 일상이 돼가고 있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항의하며 지난 1월 귀국한 주한일본대사는 '함승차사'이고, 독도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도발과 그에 항의하기 위한 한국 외교부의 주한일본대사관 관계자 초치는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24일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일본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 정부가 항의하면서 스즈키 히데오(鈴木秀生)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는 올해 들어 알려진 것으로만 4번째로 초치(招致, 항의 등 입장 전달을 위해 외교부가 주한 외교사절을 부르는 것)됐다.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의 발언(1월 17일), 독도 영유권 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초·중학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 고시(2월 14일),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2월 22일, 이상 초치 날짜) 등과 관련해 스즈키 공사는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잇달아 불려왔다. 모두 독도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2012년 12월 다시 권좌를 차지한 후 장기 집권 가도를 달리고 있는 아베 정권은 '강한 일본', '전후체제 탈피' 등 자신이 세운 국가 전략을 하나하나 이행하고 있으며, 독도를 비롯한 영토 문제에 대한 주장 강화는 그 프로젝트의 한 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결국 독도와 관련한 일본의 도발은 최소한 아베 정권 하에서 쉼없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일본대사는 부산 소녀상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1월 9일 도쿄로 돌아간 뒤 70일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국가적 갈등 상황도 아닌데 이처럼 대사의 본국 소환이 길어진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일본 조야에서는 5월 9일 대선 직후 출범할 한국 새 정부와의 관계 설정 준비, 북한 도발에 맞선 한일간 공조 등을 위해 나가미네 대사를 복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극우성향 초등학교 건립과 관련한 특혜 제공 스캔들로 지지율이 속속 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자신의 지지율 상승에 힘을 실어준 대사 소환 조치를 조기에 돌이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 외교 소식통은 "아베 총리가 대사를 복귀시킬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일간에 대사 소환, 초치 등이 일상화한 가운데 갈등을 실질적으로 풀기 위한 외교는 사실상 사라진 모양새다. 일본은 한일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 독도 영유권 주장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고, 한국의 과도 정부는 그때마다 주한일본공사를 불러 관행적으로 항의할 뿐이다.
재작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 이후 갈등 요인들이 있어도 전체적인 한일관계는 선순환 흐름을 유지했고, 북핵에 맞선 공조를 비롯한 대국적인 협력을 위해 공방을 자제했던 것도 지나간 얘기가 됐다.
일본 전문가들은 한일관계의 삐걱댐은 어느 정도 구조적인 단계에 들어섰다고 진단하면서 양국이 갈등할 때 하더라도 경제, 안보, 문화 등에서 국익을 위해 필요한 협력까지 훼손하지는 않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립외교원 윤덕민 원장은 24일 "일본이 독도와 교과서 문제 등에서 자신들 주장을 조직적이고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기에 정부는 당연히 대응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한일간에 북핵 문제와 경제 등에서 협력할 분야가 많이 있기에 역사와 경제·안보 문제는 분리해서 접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대 이원덕 교수는 "대일외교에서 국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일외교 '리셋'(reset, 새롭게 설정)을 해서 사안별로 전략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일외교 각 어젠다(이슈) 사이에서 '균형잡기'가 중요하다"며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제가 사회·문화·경제·안보 관련 한일교류의 흐름을 차단하지 않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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