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불가리아 대선개입 정황"…친러정권 수립지원 문건

입력 2017-03-24 14:22
"러, 불가리아 대선개입 정황"…친러정권 수립지원 문건

미 언론 보도…여론조사 조작·가짜뉴스 유포 등 수법 구사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작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지탄을 받는 러시아가 불가리아 대선에도 입김을 넣은 정황이 잡혔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불가리아의 전·현직 고위 관리들은 작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친러시아 사회당에 대선 승리를 위한 지침이 담긴 문건이 전달됐다고 밝혔다.

이들 관리는 문건이 러시아의 전직 첩보원이자 불가리아통인 레오니트 레셰트니코프가 러시아 정부의 지시를 받아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크렘린궁과 연계된 싱크탱크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30페이지의 문건에는 가짜뉴스와 조작된 여론조사를 통해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방법이 담겼다.

문건을 읽은 관리들은 내용 중에 사회당의 지지율을 부풀리는 여론조사를 매주 의뢰하고, 친러 매체를 통해 가짜뉴스를 유포해 후보의 이미지를 포장하라는 조언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사회당에게 러시아에 대한 제재 해제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한 비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계속해서 강조하라고 제안하는 내용도 있었다.

아울러 뉴스의 효과를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 가짜뉴스를 주류 언론에 보도하기 전에 먼저 블로그에 게재하라는 지침까지 제시됐다.

사회당은 크림반도 병합 후 러시아에 부과된 제재를 해제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역할을 제한하자는 주장하는 친러 정당으로, 사회당 소속이었던 루멘 라데프 현 대통령은 작년 대선에서 59%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WSJ는 레셰트니코프와 코르넬리야 니노바 사회당 대표가 작년 8월 소피아의 한 호텔에서 만남을 가진 것을 언급하며 문건의 존재가 근거가 없지 않음을 강조했다.

또 이 제안들이 작년 대선에서 어느 정도 실행됐으나 라데프의 승리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WSJ는 미국 연방수사국과 같은 역할을 하는 불가리아 국가안보 정보기관도 문건을 확보했지만 기밀 유지 의무상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지침이 실제 불가리아 사회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방증도 잇따르고 있다.

불가리아의 언론 모니터링 기관들과 정치 분석가들도 작년 대선 기간 실제로 러시아에 우호적인 반 서구적 뉴스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고 인정했다.

데이터 분석업체 센시카를 운영하는 바실 벨리츠코프는 WSJ에 자신의 개발한 언론 감시 알고리즘을 통해 작년 대선 기간 '푸틴에 대한 공격', 'EU의 사망' '나토는 암적 존재'라는 표현이 담긴 반서구적 기사가 급증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작년 여름까지 하루 50개에 불과했던 이런 기사들이 대선 2주 전에는 400개까지 늘어났고, 소셜미디어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벨리츠코프는 이는 과거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전략이 소셜미디어 시대에 맞춰 진화한 것이라며 "EU는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가 과거 위성국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는 가운데 오는 26일 조기 총선을 앞둔 불가리아에선 사회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에 로젠 플레브넬리에프 전 불가리아 대통령이 "(현 상황이) 매우 우려된다"며 "동유럽에서의 러시아의 활동이 새로운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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